수원법률사무소 술 맛나는 만남…안동소주 양조장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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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준영 작성일25-10-07 20:04 조회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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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미식 즐기는 여행‘안동 더 다이닝’개성 다른 양조장 돌며안동소주와 맞는안주 곁들여 시음하고역사 공부까지
맛·향 가장 좋은 45도한식과 훌륭한 궁합
나라 안 선비의 절반이 거주하던 영남에서도 특히 ‘선비의 고장’으로 불린 안동 사대부 집안에 술 향이 가득한 날은 제삿날이었다. 제례에 올릴 술을 담그는 날에는 몸가짐까지 반듯해야 했다. 발효된 술을 증류해 한 방울씩 모아 만드는 증류주는 귀할 수밖에 없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빚은 술은 조상을 받드는 데 쓰이고, 손님을 대접하는 접빈의 미덕으로 이어졌다. 이 봉제사접빈객 전통은 오늘날 안동소주의 역사와 품격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1200년 전 신라 시대에 증류 기술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예부터 가양주라 하여 제사나 손님 접대에 술을 직접 빚어 올렸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가양주를 금지해 명맥이 끊길 뻔했고, 1960년대에는 먹을 쌀조차 부족해 술 빚기가 주춤했습니다. 그러나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계기로 전통주 발굴이 본격화되면서 안동소주가 문화재로 지정됐지요.”
안동에는 현재 9개의 안동소주 브랜드가 있다. 이 가운데 ‘민속주 안동소주’는 ‘조옥화 소주’로 잘 알려져 있다. 공장 한가운데 자리한 박물관은 조옥화 명인의 전통 안동소주의 복원 성과를 상징한다. 조 명인은 1987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됐으며, 2020년 별세 후에는 아들 김연박 명인이 뒤를 이었다. 김 명인은 “1990년만 해도 새벽부터 소주를 사기 위해 줄을 섰고, 국수 장수와 빵 장수까지 몰려들 정도였다”는 일화를 전했다.
그는 “술맛을 좌우하는 것은 누룩”이라 강조한다. 특허청에 등록된 누룩 성분을 자랑하는 이는 화학과 출신 아내 배경화씨다. 명인과 무형문화재 부부는 방문객들과 누룩 틀 밟기 체험을 능숙하게 진행하며, 투어 말미에는 직접 빚은 소주 시음을 제공한다.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자연 숙성시킨 술을 소줏고리(증류기)에서 증류해 “맛과 향이 가장 좋은” 45도에 증류를 마치는 소주는 알싸하고 스파이시한 풍미를 내 한식과 훌륭한 궁합을 이룬다. “술과 음식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하는 만큼 이 박물관에서는 전통 음식도 비중 있게 소개하고 있다.
“옛날에는 소줏고리가 마을에 한두 개 있을까 말까 했는데, 값으로 치면 쌀 네 가마니에 해당할 정도로 비쌌습니다.”
또 다른 대표적 양조장 ‘명인 안동소주’의 박찬관 대표는 소줏고리에 막걸리 상태의 술을 넣고 증류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명인 안동소주는 일반적인 2단 담금 대신 3단 담금, 감압식 증류 방식을 적용해 누룩 향을 줄인 것이 특징이다. 같은 안동소주라도 제조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풍미가 나는 점이 흥미롭다.
양조장을 일군 이는 반남 박씨 25대손이자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 제6호 박재서 명인이다. 현재는 아들 박 대표와 손자 박춘우 본부장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전시관에는 누룩방 재현 공간부터 각지의 소주와 다양한 소줏고리까지 가득해 ‘소주 마니아의 아지트’를 방불케 했다.
“이 투명한 술을 눈으로 먼저 음미한 뒤, 흔들어서 향을 맡아봅시다. 그리고 입술을 한번 적셔보세요. 달짝지근함은 쌀의 단맛이에요. 그다음 술 한 모금을 3초 정도 물고 있다가 천천히 삼키면서 코로 숨을 내쉬어보세요. 뜨뜻한 온기가 착 내려가면서 코로 향이 싹 나오죠?”
시음 코너에서는 21도, 35도, 45도 소주를 맛볼 수 있었다. 오전 9시에 45도 소주를 마시는 것은 모험 같았지만, 박 대표의 설명을 따라 음미하니 진지한 실험처럼 느껴졌다. 소줏고리에서 막 내린 78도 소주도 접할 수 있었는데, 입술에 닿자마자 마법처럼 짙은 향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어 박 본부장이 45도 안동소주로 하이볼을 만드는 클래스를 진행했다. 얼음을 넣은 잔에 소주와 탄산수, 레몬 슬라이스를 섞고, 블루 퀴라소 시럽을 더하면 청량한 파란색 칵테일이 완성된다. “전통을 지키되 젊은 세대와 연결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는 박 본부장은 오크통 숙성 등 안동소주의 고도화 작업도 추진 중이다.
도포 자락 휘날리며 방문객을 맞은 박민재 대표의 ‘브랜드관 잔잔’에서도 명인 안동소주를 활용한 칵테일을 체험할 수 있다. 검은콩 두유와 캐러멜 시럽이 들어가는 ‘안동 한량’, 보리차와 재스민 시럽을 더한 ‘솥’이 제공됐다. 장독대를 닮은 플레이팅과 불 쇼 퍼포먼스가 보는 재미를 더했다. 종가에서 전수한 북어보풀음 안주와 함께 ‘안동 하입보이’ ‘안동 사워’ 같은 자체 개발 칵테일 6종이 절찬리 판매 중이다. 금·토·일 주말만 운영하지만,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인기다. NFT를 활용한 소개 자료 제작, 추억 사진 라벨링 이벤트 등 안동대 출신 20대 청년 창업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눈길을 끈다.
안동소주 양조장을 돌다 보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술맛을 발견하는 동시에 소주의 역사까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맹개마을의 ‘진맥소주’는 1540년대 조리서 <수운잡방>을 비롯한 고문헌에 기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소주 제조법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술이다. 주정을 물에 타 감미료를 첨가한 희석식 소주가 98%를 차지하는 국내 시장에서, 직접 파종해 수확한 밀을 토굴에서 숙성해 만든 증류식 소주의 가치는 클 수밖에 없다. 18년 전 이곳에 정착한 박성호 대표는 편리한 다리 건설 대신 징검다리를 이용하고 태양광 전기를 에너지 삼고 술지게미를 거름으로 유기농 농사를 짓는다. 그는 “지속 가능한 술과 마을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1540년 이후 사라졌던 소주가 500년 뒤에도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술을 빚는다”고 말했다.
밀소주 제조 과정을 설명한 박 대표는 방문객을 메밀밭으로 이끌었다. 와이너리 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떼루아’를 보여주려는 의도다. 초여름 황금 물결을 이뤘던 3만평 밀밭을 지금은 하얀 메밀꽃이 채우고 있다. 산악지역이지만 낙동강 덕분에 비옥한 안동에서는 밀이 잘 자란다.
상압증류 방식을 채택한 진맥소주 술도가에서 또 중요한 곳이 숙성실이다. 배우 김태희씨의 해외 진출작으로 화제가 된 아마존프라임 드라마 <버터플라이> 촬영이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공기 중 알코올 농도가 2%쯤 된다는 토굴 숙성실의 항아리와 오크통에서 소주가 맛을 쌓고 있었다. 박 대표는 숙성을 “맛과 향이 제대로 되고, 술이 단정한 모습이 되는 과정”으로 비유했다. 오크통 숙성 소주는 국내뿐만 아니라 뉴욕, 런던 등 미쉐린 레스토랑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양조장 투어를 하며 진맥소주 맛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졌다. 시음회의 첫 주자인 22도 소주는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페어링 안주로 나온 안동 사과와 백김치를 얹은 문어숙회가 술맛을 배가시켰다. “밀의 캐릭터를 잘 살렸다”는 맹개술도가의 시그니처 40도를 머금자 통밀의 풍부한 향과 맛이 혀를 감쌌다. 한입 크기로 나온 안동찜닭과 합이 좋았다. 위스키 마니아들이 선호한다는 53도에서는 묵직한 단맛이 났다. 탕국을 재해석한 국물 요리와 유기농 깻잎을 곁들인 돔베고기까지 더하니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안동포의 고장 금소마을에서는 이곳에서만 마실 수 있는 대마 차로 손님을 맞았다. ‘전통리조트 구름에’의 김점희 셰프가 안동찜닭과 함께 시중에서 접하기 힘든 가양주 페어링을 선보였다. 의성김씨 문중에 전해오는 <온주법>의 레시피로 만든 ‘안동 황금쥬’는 시트러스 향이 산뜻했고, ‘노송주’는 배추전과 조화로웠다. 소주라는 같은 장르로 묶였지만 원료나 증류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풍미를 낸다는 걸, 다양한 시음 체험을 통해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가양주로 안동을 소개한다”는 김 셰프로부터 맛있는 술 이야기를 들으며 분주히 젓가락을 옮겼다. 금소마을은 올해 3월 대규모 산불 피해를 극복하고 ‘촌캉스’ 프로그램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방문객들은 안동포의 원료가 되는 대마밭을 둘러보고, 안동포 짜기 시연과 장인들의 노동요 베틀가를 감상하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임하양조 윤강호 대표의 안내에 따라 누룩과 고두밥을 주물러 만든 막걸리 통을 고이 안고 상행선 기차에 올랐다. 일주일 뒤 보글보글 술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안동의 넉넉한 인심과 극진한 정성을 떠올렸다. 입안에 침이 고였다.
이 안동 투어는 코레일관광개발의 1박 2일 프리미엄 여행상품 ‘안동 더 다이닝’으로 즐길 수 있다. ‘2025 K-미식 전통주 벨트’ 사업의 하나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다섯 잔의 코스로 구성된다. 종가 상차림(맞이의 잔), 병산서원과 선성수상길 산책(풍류의 잔), 명인 안동소주 견학, 맹개마을 밀소주와 안주 페어링(깊이의 잔), 금소마을 가양주 체험과 막걸리 만들기(머무는 잔), 그리고 안동 디저트(기억의 잔)까지 이어진다. 오는 10월24·31일, 11월14·21일 총 네 차례 진행되며, 농림축산식품부와 안동시 지원으로 1인 25만2000원에 판매된다. 왕복 열차료, 연계 차량비, 입장료, 식사, 전통주 체험료, 조식 푸드박스, 기념 굿즈가 포함된 가격이다. 예약은 코레일관광개발 누리집에서 가능하다.
정부가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이유로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고 나섰다. 배임죄를 유지하되 ‘합리적 결정’이라고 판단되면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는 접근법보다 더 기업에 유리한 방식이다. 정부는 처벌 공백을 막기 위해 대체 입법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시민단체들은 배임죄가 사라질 경우 총수 일가가 일감 몰아주기, 부당합병 등을 통해 사익을 추구해도 처벌을 받지 않아 결국 회사와 소액주주가 피해를 떠안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30일 발표한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에는 형법에서 배임죄를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는 “배임죄 요건이 추상적이고 적용 범위가 넓어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돼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당정 구상대로 된다면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있었던 배임죄가 72년 만에 사라지게 된다.
정부는 배임죄 폐지로 인한 처벌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대체 입법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 자문을 거쳐 배임죄 요건을 명확히 하고 처벌 범위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특별법을 제정해 주체나 행위 요건을 한정하는 방식으로 처벌 범위를 좁히거나, 기존에 배임죄로 처벌되던 유형을 세분화해 개별법에 반영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며 “어떤 방안이 효율적인지는 대체 입법 마련 과정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방안은 국회에 제출된 형법 개정안보다 더 완화된 접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김태년 민주당 의원과 고동진·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각각 배임죄 단서 조항으로 ‘경영판단 원칙’을 명문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는 경영진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합리적 의사결정을 했는데도 결과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엔 배임죄를 적용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재계도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를 요구해왔다.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변호사)은 “이들 법안은 이미 검찰 수사·기소단계에서 적용되는 경영판단 원칙을 법률상 명문화하는 것”이라며 “배임죄 면책 범위를 실질적으로 넓혔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제시한 것은 국회 발의안이나 재계 요구보다도 완화된 조치”라고 했다.
기업 정보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소액주주들이 민사소송으로 총수 일가 등에게 책임을 묻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배임죄를 폐지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 접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설령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 등을 통한 민사소송이 활성화된다 해도 총수 일가가 사익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 주주가 이를 명확하게 찾아내는 게 쉽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내부자가 아닌 이상 문제가 있는 회사의 의사결정을 파악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등 시민·노동단체는 “배임죄가 사라지면 총수 일가가 회사 이익을 외면한 채 사적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처벌받지 않아 결국 회사와 이해관계자가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을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경영판단 원칙을 명문화하는 방식으로 형법 개정이 이뤄진다 해도 해당 원칙의 적용범위가 확대돼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 변호사는 “지배주주와의 거래처럼 이해 상충 가능성이 큰 사안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경영판단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닉네임 ‘카리스마짱’은 리니지 세계에서 꽤나 이름을 날린 이른바 ‘네임드’ 유저다. 리니지 1에서 ‘인연’이라는 이름의 혈맹을 이끌었고, 리니지 2 레볼루션에선 혈원 45명을 거느린 혈맹 ‘꽃섬’의 군주를 맡고 있다.
지난 21일 전남 여수의 작은 섬 상화도에서 만난 카리스마짱의 ‘본체’는 호탕한 인상의 김병수씨(66)였다. 꽃섬이란 혈맹 이름은 그가 돌문어와 소라를 잡으며 살아가는 이 섬의 별칭에서 따왔다.
“완전 전쟁통이에요, 전쟁통.” 김씨가 기자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전날 그의 혈맹이 적들의 공격을 받는 바람에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고 했다. 군주인 그가 협상에 나서며 큰 싸움은 막았지만 출혈(레벨 하락)이 컸다.
“군주를 오래 하다 보니 협상에 익숙해졌다고 할까? 저쪽 군주한테 문자를 넣어서 왜 우리를 치느냐 따졌더니 최근 우리 혈(맹)에 이사온 혈원 하나가 꼬장을 부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이 혈원을 탈퇴시키고 쟁(전쟁)을 끝냈습니다. 군주가 중재를 못하면 혈(맹)도 해체되고 복잡해지거든요.”
리니지는 김씨가 1998년부터 28년째 놓지 않고 있는 취미다. 초등학생인 아들을 따라간 PC방에서 우연히 접한 이후 리니지는 그에게 떼려야 뗼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요즘도 하루 서너 시간은 리니지에 투자한다. 혈맹의 지도자로서 혈원을 관리하고, 적으로부터 성을 지키려면 눈을 돌릴 틈이 없다. ‘자동 사냥’(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캐릭터가 스스로 몬스터를 찾아 사냥하고 아이템을 획득하는 기능)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카리스마짱’이 리니지 안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 최소 12시간 이상이다.
“리니지는 나한테 인생이에요. 우리 사는 거랑 똑같아요.”
국내 최초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가 1996년 정식 출시된 이후 30년이 된다. 이제 10~20년 역사를 가진 게임은 흔하고 서비스 종료 후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게임과 함께 게이머들도 나이를 먹었다. 고령화가 먼저 진행된 일본에선 이미 4년 전 최초의 e스포츠 시니어 프로팀이 탄생했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게임에 빠진 중장년층, 일명 ‘그레이 게이머’(Gray Gamer)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레이 게이머의 증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를 보면 40대의 60.7%, 50대의 44.6%가 게임을 한다고 응답했다. 60대의 게임 이용률도 31.1%에 달했다. 경제력을 확보한 이들은 아이템 구매 등 소비에서도 청년 세대에 뒤지지 않는다.
그레이 게이머에 대한 업계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2020년대 들어 특히 활발해진 ‘추억의 게임’ 잇단 부활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의 후속작이 내년 초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고, 2000년대 중반 인기였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윈드 슬레이어’는 서비스 종료 12년 만인 지난 7월 다시 돌아왔다. 2016년 인기 하락과 함께 폐지된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프로리그의 부활도 추진되고 있다.
업계에선 어린 시절 해봤던 추억의 게임이 다시 나올 경우 이용자의 주머니가 보다 쉽게 열린다고 본다. 중견 게임사 팡스카이의 이병진 대표는 “이미 높은 인지도와 팬층을 확보한 IP(지식재산권)로 다시 서비스하면 유저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켜 효과적인 마케팅이 가능하다”며 “아낀 마케팅 비용으로는 게임 콘텐츠 개발에 집중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중장년층 게이머의 폭발적 성장에도 여전히 게이머를 대표하는 얼굴은 10~30대의 청년이다. 디자인 등 게임의 구성 요소가 이들의 젊은 신체를 전제로 만들어져 게임 방법이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글자 크기가 작은 경우가 많다. 게임의 주 무대가 PC에서 모바일로 옮겨가면서 이런 경향은 더 강해졌다.
통증의학전문의이자 30년 넘게 게임을 해온 자칭 ‘올드 게이머’ 김홍선씨(48)도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그는 진료실에서 게임 때문에 통증을 호소하는 중장년 환자를 종종 만난다.
“피지컬(신체 능력)이 중요한 게임은 아무래도 어렵죠. 집중력이 떨어지는 데다 일이나 육아를 하다 보면 시간을 투자하기도 어렵고요. 글씨나 자막이 너무 작은 것도 고령 게이머에겐 부담스러워요. 직접 게임을 하기보다 게임 라이브 방송을 보는 경우도 많죠”
열정적인 그레이 게이머들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게임을 한다. 시간을 들여 약초·광물(체력 회복 및 능력치 강화에 쓰인다)을 캐지 못하는 대신 아이템을 구매해 전력을 보충하거나 신체 능력에 따른 유불리가 덜한 장르로 아예 갈아타기도 한다. 중장년층 하면 흔히 떠올리는, 식당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과 달리 능동적인 모습이다.
“롤(LOL)처럼 반응 속도가 중요한 게임 말고 ‘턴제’로 넘어간 친구들이 많아요.” 30년 넘게 온갖 게임을 섭렵한 A씨(45)의 말이다. 턴제는 플레이어가 자신의 차례에 플레이하도록 구성된 게임 장르다. 그는 “이제 내 몸을 이해하고 노하우가 생기다 보니 딱 1시간만이라도 젊은 게이머와 대등하게 싸우려고 한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중장년 및 노년의 게이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1990년대 후반 사회 초년생 시절 스타크래프트 등 초기 온라인 게임을 접하며 PC방에 다닌 세대(1960년대 후반 출생)가 수년 안에 노년기에 진입하기 때문이다.
이경혁 게임평론가는 말한다. “게이머는 늘 젊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노인정에서 같이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탑골공원에서 ‘네가 저그(스타크래프트 종족)를 잘했네 못했네’ 하며 싸울 날이 곧 옵니다. 이미 매출 상당수가 중장년층에게 나오고 있어요. 게이머는 곧 젊은 남성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에 의문을 던질 때가 됐습니다.”
변화는 더디지만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리니지 운영사인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주력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키우거나 줄일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저시력자도 크기를 조절해가며 편리하게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다. ‘로스트 아크’의 스마일게이트는 2022년 국내 게임 업계 최초로 내부 조직에 D&I실(다양성·포용성)을 설치했다.
북미와 유럽의 게임 업계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게임 내 접근성 개선 및 다양성 확보가 중요한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게임 속 메뉴·대화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을 갖추거나 유색 인종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게임이 늘고 있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도영임 카이스트(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한국 게임업계의 관련 노력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지적한다. 도 교수는 “국내 주류 게임회사들의 우선순위는 재미나 수익성에 머물고 있다”며 “다양성, 접근성 개선이 바로 매출로 반영되는 구조가 아니라 아직까진 체면치레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스테레오 타입 바깥의 게이머, 즉 노년층·여성·장애인·어린이 등을 포용하는 게임을 지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경혁 평론가는 “게임이 특정 사람들만의 매체가 아닌 진정한 대중문화로 도약하려면 인종·성별·나이·장애 여부를 뛰어넘는 모두를 위한 매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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