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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플리카사이트 ‘지방선거의 해’ 지자체 복지사업 눈에 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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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준영 작성일26-01-01 04:48 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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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플리카사이트 ‘지방정부’ 기조 맞춤 특화사업서울, 재개발 규제 대폭 풀고경기, 일산대교 통행료 ‘반값’충남표 통합의료돌봄도 눈길
6·3 지방선거가 치러질 올해 전국 지자체들은 주민의 마음을 끌 다양한 복지정책을 강화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방정부’ 강화 방침에 맞춰 지방특화 사업도 실시한다.
서울시는 2031년까지 총 31만가구 공급을 목표로 민간 건축 투자 활성화를 위한 건축심의 개선, 도시정비형 재개발 제도 완화 등을 새롭게 추진한다. ‘손목닥터9988’의 기능도 대폭 강화한다. 취약계층의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한 ‘서울런’에 인공지능(AI)을 전면 도입해 다양한 AI 강좌도 제공한다.
경기도는 민자도로인 일산대교의 통행료를 반값으로 낮춘다. 도 주력 사업인 주 4.5일제 대상 업체를 늘리는 한편 청년 신혼부부에게는 50만원의 결혼 축하 복지포인트를 지급한다. 6·25 및 월남전 참전 유공자에게 지급하는 참전명예수당도 연 60만원에서 80만원으로 인상한다. 가족돌봄수당 지원 지역을 14개 시군에서 26개로 확대한다.
인천은 내년부터 2군·8구에서 2군·9구로 행정체제가 개편된다. 중구와 동구가 통합돼 제물포구가 신설되고, 중구에 속했던 영종도는 영종구로 분구한다. 전국을 ‘한나절 생활권’으로 바꿀 인천발 KTX도 12월 개통된다. 75세 이상 노인에게는 무료 교통카드인 ‘실버 패스’가 지급된다.
충북은 소득기준과 관계없이 생계가 어려운 도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먹거리 기본보장 ‘그냥드림’ 사업이 처음으로 추진된다. 충북의 대표 복지정책인 ‘의료비 후불제’ 지원 대상과 한도도 확대된다. 중증장애인이 신체활동 등 건강 목표를 달성하면 월 5만원을 지급하는 ‘장애인 더(The More) 건강소득 지원 시범사업’도 새롭게 추진된다.
충남은 고령자들이 병원 등 특정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고도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서 의료·요양·돌봄을 통합지원받는 제도를 적극 시행한다. 천안과 아산에서는 시내버스에도 ‘현금 없는 결제’가 본격 시행된다.
대전에서는 건립 추진 15년 만에 완공된 대전 유성복합터미널이 1월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 국내 최초 신교통수단인 3칸 굴절버스도 3월 첫선을 보인다. 건양대병원~용소삼거리~도안동로~유성온천역을 잇는 총 6.5㎞ 전용차로에서 시범 운행되며 최대 230여명을 수송할 수 있다.
전남도는 농어민들에게 지급되는 공익수당을 기존 60만원에서 70만원으로 상향하는 한편 여성 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지원 나이를 80세로 늘린다. 농업과 해양생태계, 산림 관측에 활용할 초소형 위성 개발에도 나선다.
전북의 가장 큰 변화는 소상공인을 위한 금융 지원이다. 전북도는 신용 7등급 이상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최대 2000만원 한도의 마이너스통장 발급을 보증하는 ‘희망채움통장’을 도입한다. 또 저출생 대응책으로 고용보험을 적용받기 어려운 1인 소상공인과 농어업인을 위한 출산급여가 신설된다. 순창과 장수군에서는 모든 주민에게 매월 1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시행된다.
강원도는 강원국방벤처센터를 중심으로 방산 분야 기업 발굴, 전시·품평회, 기술 고도화 지원 등 방위산업 진출을 위한 맞춤형 지원을 강화한다. 농업·축산·어업 분야에서는 강원특별법 농지 특례인 농촌활력촉진지구 지정 최소면적 3만㎡ 기준을 삭제해 다양한 개발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72세 이상 대구시민은 내년부터 시내버스와 도시철도 등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 시절 폐지했던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거주요건’도 내년부터 부활한다.
세종시는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부터 농촌 지역 빈집에 철거·정비명령을 한 뒤에도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최대 5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연 2회까지 부과하기로 했다.
지난해 3월 E씨(23)는 새벽에 수영을 하러나가다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가슴 안에서 “무언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람 빠진 타이어를 끌고 다니는 자전거”처럼 E씨는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침대까지 갈 수도 없어 바닥에 누워 있다가 영문도 모른 채 울었다. 글은 읽히지 않았고 좋아하던 야구중계를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단순히 지친 거라고 생각했지만 증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1년여가 흐른 지난 5월 E씨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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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흔히 ‘마음의 감기’로 불린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E씨가 겪었듯, 우울증은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여성들은 우울증을 ‘참으면 나을 수 있는 가벼운 병’으로 여기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에게 우울은 감기 정도의 가벼운 증상이 아니었다. 이들은 우울을 “가슴에 두려움에 떠는 돌덩이가 얹혀 있는 느낌”(K씨·23), “근육이 사라지는 느낌”(H씨·29), “공기가 끈적한 꿀 같은 느낌”(D씨·32) 등으로 표현했다. E씨가 바닥에서 침대까지 갈 수 없었듯, 우울이 찾아오면 “머리도 감을 수 없고 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 상태”(I씨·26)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다 극심한 충동이 오면 “칼로 가슴을 찢어내고 싶은 감정”(B씨·32), “죽고 싶단 감정이 강렬해 이성을 지배하는 느낌”(Q씨·17), “초조하고 미칠 것 같은 기분”(A씨·20)을 느꼈다. 여성들은 “우울은 그냥 훌쩍이다가 맛있는 걸 사 먹고 잊는 정도의 감정이 아니다”(D씨)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고통은 질병으로 이해되기보다 개인의 성격이나 태도 문제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여성들은 ‘호르몬 때문에’, ‘예민해서’, ‘나약해서’ 등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성격 문제로 우울이 환원되는 경험을 겪었다. 우울증·공황장애 등을 진단받은 A씨는 자신의 병을 증명하려고 진단서를 받아 부모에게 보여줬지만 “네가 게을러서 그런 거 아니냐”, “오버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폭력으로 느끼는 자살 충동을 가볍게 여기는 경찰의 태도”(O씨·25), “내가 느끼는 우울이 구조적 문제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상담사”(N씨·25) 등 우울을 개인의 잘못으로 여기는 주변의 태도는 상처로 남았다.
이들은 여성의 우울이 ‘구조적 고통’으로 여겨지고, 사회적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높은 청년 자살률을 낮추려고 ‘청년 마음건강 지원사업’,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은 자살을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난히 많은 여성 청년의 우울증에 관해 국가 차원의 연구를 하거나 대책을 마련한 적은 없다. 한국과 달리 호주에선 젊은 여성의 자해·자살 시도 비율이 높게 나타나자 이를 ‘아동기의 학대·친밀한 관계의 파트너 폭력으로 인한 자살 시도’로 분석하고 ‘국가 자살 예방 전략(2025~2035)’에 반영하기도 했다.
수빈은 “우울증을 겪는 여성들에게 사회는 ‘우울할 이유가 없는데 너희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너무 쉽게 말한다”며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비난받는 게 두려워 병세가 심해지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은 “정부도 사회도 여성의 우울증과 자살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여성 집단에서 유난히 높은 우울증과 급증하는 자살률의 원인을 들여다보고 그에 맞춘 상담과 치료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울증에 대한 인식 개선과 상담·치료 체계의 구축은 모든 우울증 환자에게 필요하다. 인터뷰에 참여한 여성들 역시 경제적 지원과 우울증 환자를 위한 일자리 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체계만으로는 여성의 우울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성을 향한 차별과 폭력이 계속되는 한 우울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10~30대 여성들은 2010년대 후반 ‘페미니즘 리부트’(페미니즘 대중화)를 경험한 세대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성폭력을 공론화한 ‘미투’ 운동, 2020년 실태가 드러난 성착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사회에 만연한 여성을 향한 폭력과 차별 문제가 부각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백래시(backlash·반동)도 거셌다. 정치권은 구조적 성차별의 존재를 부인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성폭력처벌법에 무고죄를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다. 윤 전 대통령 탄핵 광장에서 등장한 ‘응원봉 여성들’은 이러한 백래시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광장에 힘입어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도 “특정 부분에서 남성 차별을 연구하라”고 말하는 등 여성 의제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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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사회를 보며 여성들은 분노·불안을 넘어 무력감을 느꼈다. 여성들은 “대통령이 성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할 때”(O씨), “채용 성차별을 한 기업이 벌금형에 그칠 때”(여름), “여성들이 죽었다는 뉴스를 끊임없이 접할 때”(윤), 사회로부터 “너희가 아무리 죽어도 우리는 바뀌지 않는다. 너희 목숨은 하찮다”(윤), “아무리 외쳐도 무시당할 것이다”(H씨)와 같은 메시지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바뀌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사회를 바꿀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돌리기도 했다. “거대한 구조 속에서 나 역시도 누군가를 착취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A씨), “사회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없다는 고통”(L씨·24)은 여성들의 우울감을 키웠다.
여성들은 “성범죄에 대한 온당한 처벌”(8명), “노동 현장에서의 차별 대책”(9명)이 있어야 우울증도 옅어질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여성을 향한 차별과 폭력을 ‘논쟁 대상’, ‘해석의 영역’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름은 “한국 사회는 여성 차별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며 “국가도 사회도 그 누구도 여성인 나를 사람으로 바라봐주지 않고 존중해주지 않는데 어느 누가 제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체화된 무력감’이야말로 조용한 학살의 시작”이라며 “차별과 폭력에 대한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울이 파도처럼 덮치는 순간에도 여성들은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은 죽고 싶었지만 동시에 살아남아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여성들의 삶은 때로 우울에 먹히고 잠겼지만 이들은 우울을 다루고 우울에 맞서고 우울에 함께하기도 했다.
M씨(36)는 우울이 찾아왔을 때 대처하는 자신만의 방침을 만들었다. 일상을 살아가다 충동이 느껴지면 즉시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30분 후에도 가라앉지 않으면 자살예방센터에 전화를 건다. 그 후에도 충동이 지속되면 응급실에 간다. M씨는 “병을 다루는 일에는 이골이 났다”며 “이제 곧 (우울과) 20주년을 맞는다”며 웃었다. 다른 여성들은 노래를 듣거나(P씨·10대), 글을 쓰거나 읽고(I씨·26), 숨이 턱 끝까지 찰 때까지 달리거나(윤), 손목에 고무줄을 튕겨(규영) 충동을 억누르는 등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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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자신만의 생존법을 찾을 때까지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I씨는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하다가 극심한 불안과 충동에 휩싸여 자해했다. I씨는 친구에게 연락했고, 친구는 곧바로 달려와 상처를 치료하고 밥을 사줬다. “‘우리 죽지 않기로 약속하자’던 친구들의 말”(N씨), “돈이 없을 때 도와준 친구들”(수풀·M씨), “한강에 몸을 던지려 했을 때 역까지 데려다준 동네 방위대 분들”(O씨), “비슷한 경험을 한 여성들과의 연대”(자유별) 덕분에 여성들은 죽지 않았고, 살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말 죽고 싶었지만 사실은 그것이 살고 싶다는 강렬한 갈망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규영)고. 굳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고(N씨), 늦더라도 언젠가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으며(G씨), 이 세상은 내가 한바탕 즐기고 지나갈 세계라는 마음으로(R씨) 살아가고 있다고. 그래서 아직은 “살아있는 나 자신이 기특하다”(A씨)고. 자신을 해치게 하고 지치게 하고 때론 더 힘써 지키게 했던 우울과 함께, 여성들은 지금도 자라나고 있다.
▼ 우혜림 기자 saha@khan.kr
“국가는 그런 걸 하면 안 됩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5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소규모 토론에 참여한 적이 있다. 발제자는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알려진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였고, 앞줄에는 나중에 문재인 정부에서 차례로 청와대 정책실장이 된 장하성 교수와 김상조 교수가 있었다. 나는 발제와 토론 과정을 보면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다들 한국 경제의 주요 이슈를 두루 짚으면서도, 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 특히 ‘산업정책’을 빼먹고 있었다.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내연기관을 전기차로 바꾸고 재생에너지 전환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대해 장하성 교수의 답변은 이런 것이었다. 산업정책은 ‘관치’이자 ‘개발독재’의 일부이며, 국가는 앞으로 특정 산업을 끌고 가거나 좌지우지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김상조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를 이끈 이들은 일정한 의미에서 시장주의자였다. 이들이 내세운 재벌개혁론의 핵심은 주주자본주의, 즉 재벌 총수가 ‘소유한 주식 지분만큼의 지배력’만 가지라는 뜻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장질서를 구축하는 것이었고, 이를 교란하는 정부의 산업정책은 당연히 타도할 대상이었다. 장하성 교수의 사촌이자 사상적 맞수인 장하준 교수는 2018년 <나쁜 사마리아인들> 출간 10주년 기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10년 전 한국 조선이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주고 이제 반도체 빼고는 중국이 다 추격했는데 반도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세계 최고 자동차 기업과 삼성, LG가 한국에 다 있는데 자율주행차 같은 것을 주도적인 산업정책으로 만들면 왜 안 되느냐.”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장하성 교수는 이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바뀌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대놓고 산업정책을 이끌고 있다-때로는 보조금으로(바이든), 때로는 협박으로(트럼프). 미국은 앞으로 산업정책을 장기간 지속할 것이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 수단이자, 리쇼어링을 통한 고용 증대 정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완전히 달라졌다. 기존의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연구·개발(R&D)이나 세제 혜택 등 간접적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제 노골적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소버린’ 인공지능(AI)을 추진한다. 엔비디아로부터 공급받는 GPU 26만장 중 5만장은 아예 정부 소유다. 9월에 발표된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에는 인공지능뿐 아니라 반도체·에너지·모빌리티·바이오·방산 등 분야별로 설정된 목표가 촘촘하게 제시되어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무려 150조원의 국민성장펀드가 동원될 계획이다.
주주자본주의 시야 너무나 협소
국가와 자본이 한통속이 되는 체제. 정치경제학에서는 이를 ‘국가자본주의’라고 칭한다. 박정희의 정부 주도 산업화, 드골의 정부 지도(dirigisme)에 의한 ‘계획’들, 덩샤오핑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 최근 가장 주목받는 사례는 역시 중국이다. 중국의 개혁개방파는 한국을 벤치마킹해 강력한 산업정책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였고, 그 결과 거의 모든 과학기술과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은 한참 동안 스스로 퇴물 취급했던 산업정책을 부랴부랴 손질하며 다시 시동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산업정책을 반대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외친 장하성 등의 주장이 수그러들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의 후계자들이 요새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나 최욱의 ‘매불쇼’ 등에 출연하는 진보 패널들이다. 이들은 상법 개정, 배당소득 분리과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자본시장 선진화를 외친다. ‘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든가, ‘삼성전자는 지금보다 배당을 늘려야 한다’든가, ‘진보도 돈 벌어보자’는 식의 발언을 스스럼없이 한다. 재벌의 부당한 지배구조를 타파하고 자본시장을 선진화하면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코스피 5000’이 달성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가진 정치적 함의는 분명하다. 1400만명에 달하는 주식 투자자를 더불어민주당의 잠재적 지지집단으로 만들 수 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유권자 연합’이라고 부른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산업정책이 쇠퇴하던 최근 수십년 동안, 한국에서 ‘모험적 장기 투자’의 유일한 주체가 재벌이었던 것이다. 한국이 2차전지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LG그룹의 구본무 선대 회장이 20년 넘게 막대한 적자를 무릅쓰고 투자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가 최근 4년 연속 ‘세계 올해의 차’를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미래의 대세는 전기차임을 판단하고 대담한 투자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LG화학 물적 분할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원성,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추악한 ‘일감 몰아주기’는 이 같은 성공의 이면이다. 재벌의 모험과 재벌의 전횡은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재벌들이 이런 ‘모험적 장기 투자’를 한 이유는 본인의 위신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였다. 롤모델은 삼성전자의 기틀을 세운 이병철·이건희 선대 회장이었을 것이다. 모험도, 전횡도 ‘이 회사는 내 것’이라는 의식의 산물인 것이다.
많은 문제 불구 그들이 승리할 듯
내가 주주자본주의에 우려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들이 시장주의자여서가 아니다. 이들의 시야가 놀랄 정도로 협소하기 때문이다. 본래 주주자본주의는 기업의 장기 성장과 잘 맞지 않는다. 몰락한 GE와 휘청이는 보잉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게다가 한국의 재벌 대기업은 미우나 고우나 국민경제의 중추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공룡들과 싸워야 하는데, 이런 점은 전혀 이들의 안중에 없다. 글로벌 밸류 체인에 편입되는지 여부가 기업과 나라의 흥망을 결정하는 와중에, 이들이 보는 시야는 완전한 ‘일국(一國) 자본주의’다. 물론 이들은 항변한다. ‘자본시장이 성장하면 모험적 장기 투자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하지만 미국의 자본시장은 한국의 20~30배에 달하고, 중국 정부의 기업 보조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체 보조금 총합보다도 큰 규모다. 즉 한국의 기업들이 맞서야 하는 상대는 그냥 고래도 아닌 ‘슈퍼 고래’들이다. 한국 자본시장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통해 이들과 맞설 모험적 투자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들의 주장이 어불성설임은 한국에서 인공지능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 알 수 있다. 2차전지나 전기차와 달리, 인공지능에는 붙을 만한 재벌이 없었다. 네이버는 한국에서 가장 앞선 인공지능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에는 인공지능 투자를 어쩌면 포기할 형국이었다. ‘슈퍼 고래’들은 인공지능 하나에만 수십조원씩 쏟아붓고 있는데, 2024년 네이버는 인공지능뿐 아니라 모든 영역의 연구·개발 투자를 다 합쳐도 2조원에 못 미쳤다. 네이버가 전형적인 재벌기업과 거리가 먼 회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합리적 경영자라면, 더구나 개정된 상법에 따라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면, 슈퍼 고래들에 맞서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국가’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한 가지만 꼽자면 인공지능은 향후 국방의 핵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전장은 인공지능 드론과 4족보행 로봇에 의존할 것이고, 징집자원이 점차 부족해질 한국의 미래에 인공지능은 핵무기와 함께 핵심적인 방위자산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주주자본주의는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승리를 저지할 세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에서 모험적 장기 투자의 주체는 ‘국가’밖에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주자본주의의 발흥은 역설적이게도 국가자본주의의 강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전략적 투자 결정은 어느 조직에서 담당할까? 새해 신설될 기획예산처가 예를 들어 15년을 내다보고 양자컴퓨터에 몇조원을 투자하자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어려운 얘기다. 한국은 5년 단임제 국가이고, 기획예산처는 다음 정권에서 유지될지조차 알 수 없다. 게다가 초대 장관으로 내정된 이혜훈 전 의원은 정통 시장주의자에 가깝다. 차라리 국회 산하에 경제기획원이나 국가투자자문회의를 두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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