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대형로펌 협조하고 눈치보는 대신 뻗대고 ‘맞짱 뜨기’···쿠팡의 전례없는 대처,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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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준영 작성일26-01-04 06:49 조회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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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들이 허위 정보를 받고 있는 만큼 출국 금지와 위증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에 대해 절대 인정할 수 없다.”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이틀간 국회에서 열린 쿠팡 개인정보 침해 사고 관련 연석 청문회. 한국 쿠팡을 대표해 증인으로 출석한 해롤드 로저스 대표는 전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앞선 국회 청문회에서 보여준 동문서답으로 시간을 끄는 지연전술 대신 때때로 언성을 높이고 책상을 두드리는 등 보다 공세적인 태도였다. 나아가 한국 정부가 개인정보 침해 사고와 관련해 정보를 은폐하거나 허위 정보를 근거로 쿠팡을 몰아세운다는 취지의 주장도 폈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업과 정부의 전면전 양상이다. 그간 한국 기업은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국의 비호를 받은 적은 있을지언정 정부나 국회와 대놓고 척을 지는 일은 피해왔다. 그런데 쿠팡은 압박의 강도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자신들도 강수를 두며 정부·국회와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몽둥이가 모자라다”(김영배 의원), “까면 깔수록 밝히면 밝힐수록 쿠팡의 문제는 커지기만 한다”(정일영 의원)와 같은 반응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오는 이유다.
쿠팡만의 독특한 위기관리법이 작동하는 배경을 살펴봤다. 쿠팡이라는 기업이 국내 기업과 달리 해외에서 투자를 받아 성장해왔다는 점, 쿠팡이 상장한 미국의 규제 당국 대응에 위기관리의 우선순위가 맞춰져 있다는 점, 국내에 달리 대체재가 없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라는 입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쿠팡이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데 이견은 없었다.
정부와의 전면전으로 국면이 전환된 계기는 쿠팡의 자체 조사 결과 발표다. 지난해 12월 25일 대통령실이 ‘플랫폼 기업 개인정보 유출’ 관련 관계부처 회의 개최를 30분 앞둔 시점에서, 쿠팡은 보도자료를 냈다. 개인정보를 유출한 전 직원을 특정했고, 개인정보를 빼내는 데 사용된 장비를 모두 회수했으며, 유출자가 저장한 정보는 3000개 수준으로 모두 삭제됐다는 내용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일방적 발표”라며 쿠팡 측에 강력히 항의했다. 이에 쿠팡은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며 진행한 조사였다”며 정부와의 진실 공방으로 상황을 끌고 가고 있다. 급기야 쿠팡이 협력한 정보기관으로 지목된 국가정보원이 해롤드 로저스 대표를 위증 혐의로 고발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고객정보 침해 사고로 정부 조사를 받은 한 기업의 관계자는 “쿠팡이 셀프 조사를 발표했을 때 전례 없는 행보라 놀랐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정부 조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가용 범위 내에서 최대치의 보상안을 제시하면서 정부 눈치를 보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정부로부터 처벌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잘못 대처하면 고객들이 떠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행보였다. 그런데 쿠팡은 완전히 반대로 간다”고 했다.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대상인 기업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상황 자체가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쿠팡의 조사 결과가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적법 절차에 따라 조사를 수행한 공적 기관이 발표하지 않는 한 신뢰성에 흠결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을 지낸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출자로 지목된 전 직원이 갖고 있던 장비를 쿠팡이 먼저 확보한 다음에 포렌식 작업을 거친 것이기에 법적 절차를 밟을 때 증거 능력이 제대로 인정될 것인지, 증거의 원본성이 인정되지 않을 여지도 있다”고 했다. 쿠팡이 정부의 지시 아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고 교수는 “앞으로는 민관합동조사단이 됐건, 정부 조직 어디가 됐건 쿠팡과 소통할 때 훨씬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위기관리의 우선순위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한국 규제 당국에 대한 대응보다 미국에서의 대응에 중점을 뒀다는 얘기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이 사이버 보안 사고로 중대한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확인했을 때 4일 이내에 이를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시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주주 집단소송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실제 쿠팡 주주들은 미국에서 쿠팡이 공시 의무를 위반했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한국 정부와 척을 지더라도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와 보상안을 발표하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민관합동조사단의 결과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데다, 쿠팡의 미진한 대응으로 국회 청문회·국정조사 요구가 이어지는 등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쿠팡은 보상안 발표 직후 SEC에 자체 조사 결과 등을 공시해 사태가 사실상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일방 선언했다.
기존 국내 기업들과는 다른 쿠팡의 물적 토대가 이 같은 위기관리를 가능하게 한 셈이다. 조귀동 정치컨설팅 민 전략실장은 “국내 재벌기업들은 국가의 혜택을 받으며 성장했기에 사회 구성원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쿠팡은 사업 대상은 한국에 많이 있지만, 한국에서 자본 조달을 거의 안 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된 이해관계자들이다. 문제는 한국의 유통을 장악한 대기업이 대형 사고를 쳤는데 거의 책임지지 않는다고 했을 때, 이 독점적인 지위를 내버려 둘 수 있느냐에 있다”고 했다.
쿠팡과 정부의 전면전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31일 쿠팡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과기부, 고용노동부, 법무부 등 12개 정부 기관은 국회 청문회가 마무리된 직후 쿠팡에 대해 “국민 편에서 끝까지 책임 묻겠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개인정보 침해 사고는 물론, 산재 은폐 등 노동권 문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불공정 행위 등도 조사해 나가기로 했다. 이미 국세청은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와우 멤버십 끼워팔기 등을 심의하고 있다.
쿠팡의 위기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고학수 교수는 “당국과 척을 지고, 여론은 계속 악화된다. 이 건을 떠나서 기업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피곤한 구도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조귀동 실장은 “쿠팡이 많이 위험해지는 건 사실”이라며 “이 문제의 진짜 핵심은 과연 국내 유통 기업이 쿠팡을 대체할 수 있느냐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장기전은 정부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한국 규제 당국이 쿠팡에 차별적 대우를 하고 있다는 쿠팡의 스탠스를 강화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가에서도 쿠팡과 정부의 전면전을 일종의 통상문제로 치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쿠팡도 정부와 협조하는 태도를 취하고, 정부도 차분히 할 수 있는 일부터 대응할 필요가 있다. 쿠팡이 민간 사이버 보안 업체 3곳에 의뢰해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쿠팡의 의도를 믿을 수 없다면 해당 보안 업체 관계자들을 불러서 조사 결과를 검증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 즉 ‘맨박스(Man Box)’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일수록 자살 생각을 6.3배 더 많이 했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 ‘이퀴문도’(Equimundo)가 지난해 6월 발간한 ‘2025 미국·영국 남성 실태조사’에 담긴 내용이다. 이퀴문도는 젠더·사회정의를 위한 연구와 프로그램, 정책 변화를 주도하는 국제 단체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국 남성 10명 중 8명은 ‘가족 부양’과 ‘침묵해야 한다’는 등 전통적 남성성을 강요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퀴문도에서 디지털 전략 전문가로 활동하는 캐롤라인 헤이스는 “전통적 남성성 규범은 젠더 폭력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남성의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강요받는 남성성’이 ‘해로운 남성성’으로 표출되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헤이스는 지난해 여름 한국 UN여성기구를 방문해 디지털 공간에서 전통적 남성성 규범이 어떻게 강화되는지를 주제로 강연했다. 지난달 4일 헤이스를 비대면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사회가 남성에게 강요해온 전통적 남성성의 규범적 틀을 ‘맨박스’라고 명명했다. 강해야 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기대 등이 맨박스의 특징이다. 이런 남성들의 자살 사고가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 주목된다.
“맨박스에 갇힌 남성들은 조사 시점 전 2주간 자살 생각을 6.3배 정도 더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성 규범이 여성을 향한 가해 경험뿐 아니라 남성 자신의 정신건강과도 연관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서 여성혐오 콘텐츠의 확산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과 독일, 영국 등의 상황을 보면 경제적 계층 이동성이 떨어지고, 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성인기에 진입하는 남성들은 안정적인 직장과 주거를 자신과는 먼 일로 느낀다. 여성혐오 콘텐츠는 ‘여성이나 성소수자들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식의 서사를 내세우는데, 이 서사가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동시에 젊은 세대가 관계를 배우고 소속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이나 커뮤니티 기반 시설에 대한 정부 투자가 크게 줄었다. 청소년 스포츠 프로그램이나 공공도서관, 방과 후 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소년들이 정체성이나 소속감을 온라인 플랫폼에서 찾고 있다. 2023년 미국 남성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미국 남성의 48%가 ‘온라인 속 삶이 오프라인 삶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답했다. 2021년 10~26세 소년 10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소년 3분의 2가 게임 공간에서의 삶이 ‘훨씬 진짜 같다’고 응답했다.”
-한국에서 불거진 ‘딥페이크 성범죄’가 떠오른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실존 인물의 얼굴·음성·신체를 합성하는 성범죄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발생하며 사회적 충격을 줬다.
“지난해 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 가해자의 평균 연령이 14~15세였다고 하더라. 소년들이 하루아침에 여성혐오 콘텐츠를 접하거나 젠더 폭력을 저지르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구조적으로 ‘특정 유형의 행동’을 하도록 장려하는 환경 속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을 봐야 한다.”
-‘특정 유형의 행동’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퀴문도는 전통적 남성성 규범이 성희롱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분석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 즉 맨박스를 17가지 태도로 분류했다. ‘남성이라면 데이트 관계에서 최종적인 경제적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동성애자 남성은 진짜 남성이 아니다’, ‘남성은 존중받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같은 태도들이다.
미국 남성 가운데 이 17가지 태도에 동의하는 비율이 높은 상위 20%를 ‘맨박스에 갇힌 남성’으로, 동의 정도가 낮은 하위 20%를 ‘맨박스 밖의 남성’으로 정의했다. 그 결과 맨박스에 갇힌 남성의 71%가 성희롱 가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맨박스 밖의 남성은 7%만이 가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남성성 규범이 실제 젠더 폭력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는 남성성 규범과 온라인 성희롱 경험의 연관성을 더 분석해보려 한다.”
-소년들이 여성혐오 콘텐츠에 빠져들게 되는 특징은 무엇인가.
“문제가 되는 콘텐츠들은 데이트나 자기관리, 재정관리처럼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주제를 다룬다. 겉으로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네가 처한 어려운 상황은 여성이나 성소수자, 이민자 때문’이라며 분노의 대상을 특정 집단으로 돌린다.
(여성혐오 인플루언서로 알려진) 앤드류 테이트의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 중에는 ‘자금 관리 관련 내용만 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에 담긴 여성혐오적 규범과 가치관에 스며들게 된다. 아직 뇌가 발달 중이고, 주변에서 비판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어른이나 또래가 없는 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우려스럽다.”
-이와 관련한 연구결과들이 있다면 소개해줄 수 있을까.
“남성 청소년의 신분으로 유튜브나 틱톡 프로필을 생성했을 때 여성혐오 콘텐츠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연구가 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켄트대 연구진이 가상 계정을 만들어 분석했는데, 초기에는 외로움이나 자기계발 같은 일반적인 영상이 추천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을 비난하는 콘텐츠의 추천 비중이 커졌다. 추천 비율은 며칠 만에 13%에서 56%로 급증했다.
남성으로 설정된 프로필은 남성우월주의 콘텐츠를 검색하지 않아도 여성혐오 콘텐츠에 노출되기까지 평균 2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연구도 있다.”
-유튜브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왜 별도의 제재를 하지 않는가.
“유튜브가 여성혐오 인플루언서의 수익 창출을 막는 등 규제 방법을 찾아가고 있긴 하다. 중요한 건 수익 모델 자체가 자극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분석한 여성혐오 콘텐츠 상당수는 플랫폼 이용약관을 명백히 위반하지 않았다. 욕설처럼 노골적인 방식 대신 ‘여성은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사고방식을 은근히 주입한다. ‘수정헌법 19조(여성 참정권)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콘텐츠가 미국에서 확산됐었는데, 유튜브나 틱톡의 이용약관을 위반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고도의 자극을 주며 급속히 퍼졌다. 시청자 수나 댓글 수에 따라 제작자의 수익이 결정되는 구조에서 제작자들은 분노를 유발하는 자극적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생산하게 된다.”
-새롭게 등장한 AI 기술이 여성혐오를 부추긴 사례도 있는가.
“AI로 가짜 나체 사진을 만들어주는 이른바 ‘나체 이미지 생성 앱’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앱은 여성 사진을 대상으로만 작동하는 식으로 구현됐다. 남성의 사진을 넣으면 남성의 생식기를 여성 생식기로 자동으로 바꾸는 식이다.
최근에는 AI 친구 앱에도 주목하고 있다. 대다수 앱이 젊은 남성을 주요 이용자로 삼고 있다. 영국 남성 실태조사를 보면, 연령이 낮을수록 AI를 로맨틱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했다. 남성의 외로움이 앱의 사업적 자산이 되고, ‘친밀감’이 거래되는 상품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남성 역차별’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만의 현상인가.
“미국에서도 맥락은 다르지만 남성이 소외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남성 자살률이나 학업 이탈률, 건강 문제가 자주 언급된다. 우리는 많은 젊은 남성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느끼면서 좌절한다고 본다.
문제의 핵심은 남성에게 특정 규범에 따라 행동하길 요구하는 성별화된 시스템 자체다. 전통적 남성성 규범은 남성에게 항상 자립적이고 감정을 드러내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 그 규범을 벗어나면 조롱이나 낙인이 따른다.”
-‘남성 역차별’과 같은 맥락에서, ‘페미니즘’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남성들이 경제적·사회적 장벽에 부딪히면서 그 고통을 ‘차별’로 인식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남성에게 부과된 남성성 규범이다. 일부 남성 권리 운동 단체는 ‘남성이 힘들다’는 서사를 앞세워 ‘여성과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나아간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보다 잘 살기 때문에 남성이 힘든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남성의 자살률이 더 높은 것은 총기처럼 치명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자살 시도 비율 자체는 여성이 더 높다.”
-한국 정부는 남성 차별 영역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성평등가족부에 성형평성기획과도 신설했다.
“단일 지표만 취사선택하면 문제의 근본 원인과 맥락을 놓치기 쉽다. 미국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학교 이탈률이나 학사 학위를 끝까지 이수하지 못하는 비율이 높다는 데이터가 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남성과 여성이 각각 어떤 직업을 더 많이 선택하는지, 그 직업의 임금 수준은 어떤지도 함께 봐야 한다.
미국에서 여성은 교육이나 돌봄 분야에 많이 종사하는데, 이 직종들은 남성 중심 직종보다 임금 수준이 훨씬 낮다. 정책 기관이 남성의 고등교육 진입률을 들여다볼 거라면, 여성들이 종사하는 돌봄 노동이 왜 사회적으로 저평가돼 있는지도 함께 질문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 심화가 저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1일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에게 의뢰한 ‘소득·자산 불평등이 인구 구조에 미치는 영향 분석 및 인구 시뮬레이션’ 연구용역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교수는 보고서에서 한국사회의 소득 불평등이 점점 심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소득분위 간 평균소득 격차가 2003년 약 399만원에서 2016년 690만원으로 확대됐다. 2023년 세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최상위 20%(5분위)의 평균소득은 최하위 20%(1분위)의 5.7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이러한 소득 불평등도 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2070년 인구 변화도 추계했다. 현재 한국 사회의 불평등 수준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2070년 35세 미만 인구는 약 542만명으로 전망됐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나리오에서는 35세 미만 인구가 347만명까지 급감했지만, 불평등이 감소할 경우 737만명으로 늘어났다.
생산연령인구(15~64세) 역시 불평등이 지금처럼 유지될 경우 1530만명, 불평등이 증가할 경우 1400만명으로 추계됐다. 불평등이 감소할 때는 1660만명으로 생산연령인구가 늘었다. 불평등 심화에 따른 생산연령인구 감소는 노년부양비의 급격한 상승으로 이어져 2070년 노년부양비가 126.1%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교수는 2002~2021년 건강보험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에서도 소득 수준에 따라 출산율이 달라지는 경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직장가입자 중 소득 상위 4분위의 합계 출산율은 1.36이었지만, 최하위 1분위는 0.82였다. 다만 소득 상위 5분위의 합계 출산율은 0.89로 다시 하락했다.
김 의원은 이번 연구 결과를 두고 “이번 연구는 불평등 완화가 단순한 사회적 형평성 또는 이념적 당위성의 문제를 넘어 인구 구조 안정을 위한 필수적인 정책 과제임을 보여준다”며 “정부는 교육 경쟁 완화와 주거 및 자산 격차 해소 등 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인 접근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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