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성범죄전문변호사 [위근우의 리플레이]레트로 테마파크가 된 IMF, <태풍상사>가 고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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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준영 작성일25-10-26 20:06 조회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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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가 흘러나오는 드라마 오프닝이 의도하는 바는 명확하다. 고증보다는 당시의 촌스러움을 좀 더 코믹하게 연출한 이 오프닝에서 방송기자는 견실한 중소기업 태풍상사를 소개하며 직원들을 인터뷰한다. 이 과도하게 활기찬 첫 장면의 일차적 목표는 물론 IMF 개입 소식을 전하는 1화 마지막 순간과 대비되는 것이다. 낙관의 붕괴. 정말 그랬다. ‘나는 문제없어’는 추억의 가요기도 하지만, 외환 위기를 맞기 이전 90년대 중반 특유의 낙관이 가득한 가사였다. 이 대비엔 분명 시대적 비애가 있다. 하지만 이 오프닝에서의 희망에 들뜬 태풍상사는 완전히 사라진 과거가 아니라 결국 새 대표가 된 태풍이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 재건할 근미래의 풍경이기도 하다. 당장 방영된 4회까지만도 태풍은 아버지의 죽음과 미수금에 대한 연대 보증, 폐업 압박, 집 경매 등 갖은 시련을 겪지만 그 사이사이 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경리 오미선(김민하)을 비롯한 태풍상사 직원들의 조력으로 발주처 대방섬유의 부도를 눈치채 물건을 지키고, 불합리한 계약서로 뒤통수를 친 표상선 대표 표박호(김상호)에게 역공을 가하기도 한다. 한 회에 한 번 이상 외환 위기발 불행이 찾아오지만, 역시 한 번씩 쾌감 가득한 비즈니스 드라마로서의 활극이 펼쳐진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태풍과 미선에겐 위기가 반복되겠지만 매 순간 그들은 이겨낼 것이고 아마 퇴직한 태풍상사 멤버들도 하나둘 돌아올 것이며 ‘나는 문제없어’는 다시 울려 퍼질 것이다. 레트로 드라마로서 <태풍상사>는 IMF 사태 이전 호황의 기억과 IMF 사태를 극복한 역사적 결과론을 중첩해 위기까지도 낭만화한 가상의 과거를 만든다.
첫 화 제목인 ‘폭풍의 계절’부터 최근 화 ‘바람은 불어도’까지 각 에피소드 제목이 90년대 드라마 제목인 것에서 알 수 있듯 <태풍상사>는 스스로 레트로 테마파크임을 숨길 생각이 별로 없다. 가령 2화 ‘아스팔트 사나이’는 1995년 SBS 드라마 제목인 동시에 해당 에피소드에서 실제로 아스팔트 위를 달리며 동분서주하는 태풍을 묘사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90년대의 유산을 코드화해 적절히 이어 붙이는 사소하지만 디테일한 감각은 상업 레트로 드라마로서 <태풍상사>의 확실한 강점이다. 하지만 이처럼 90년대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장치로서의 드라마 제목들은 정작 각 작품이 만들어지고 방영되었던 실제 역사적 사회적 맥락으로부터는 철저히 분리된다. 한국 자동차 업계를 그린 <아스팔트 사나이>는 IMF 사태 이전 전형적인 한국 대기업의 기술 주권과 세계 시장 진출의 낙관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단 2년 뒤 벌어진 외환 위기와 함께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매각되고 가혹한 구조조정을 겪은 것을 떠올리면 가장 어울리지 않는 드라마를 고른 셈이지만, 상관없다. 필요한 건 그저 테마파크의 분위기를 살릴 장식물이므로. 3화 제목 ‘서울의 달’은 어떠한가. 동명의 94년도 MBC 드라마만큼 고속 성장과 이촌향도에 따른 당대 서울의 윤리적 아노미를 잘 그려낸 작품이 없다. 물론 <태풍상사>는 그런 시대 맥락엔 관심이 없다. 그저 미선이 사는 달동네의 풍경을 조금 척박하지만 정겨운 향수의 공간으로 구성해 테마파크 한 켠에 안치하기 위해 그럴싸한 90년대풍 제목이 사용될 뿐이다. 이 테마파크 안에서 태풍은 벨이 울리는 팩스의 수화기를 집어 들거나, 동년배 직원인 배송중(이상진)과 이제는 추억이 된 한컴타자 산성비 게임 대결을 하며 역사적 맥락과 분리되어 사물화된 90년대를 관광객이 된 시청자 앞에 전시한다.
이것은 단순히 IMF 사태라는 시대적 배경을 오락적으로 소비해도 되느냐는 문제는 아니다. 외환 위기의 충격은 컸지만 모두가 식음을 전폐했던 것은 아니며 그 시절에도 눈물만큼 웃음도 사랑도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어떻게 그 위기를 버텨냈는지, 그리고 그 실패와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말하겠’다는 드라마 기획의도 자체는 결코 허황되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희망의 서사가 정말 그 시대를 견뎌낸 보통 사람들에 대해 주목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 다수를, 좀 더 정확히는 낙오한 이들의 역사를 배제하는 방식의 체리피킹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공식 포스터에서 태풍은 선언한다. “무너진 건 시대지 나는 아니야.” 실제 당시에도 꺾이지 않은 이들은 있었을 것이고, 그들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한국은 외환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위기 극복의 주체는 태풍처럼 자기 앞의 가시적 고난을 이겨내는 인물만이 아니다. IMF의 혹독한 조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고, 계층 사다리에서 탈락하고, 평범한 일상을 잃었다. 그들은 명백한 시대의 피해자지만 패배자는 아니다. 그들이 단순히 낙오한 게 아니라 그들의 처절한 고통 분담을 통해 한국이 가까스로 회생했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IMF 사태를 딛고 일어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면, 그 희망이 무너진 시대에 깔린 수많은 이들의 절망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생존자가 운이 좋고 낙오한 이들이 불운했던 게 아니라, 낙오한 이들의 불운으로 생존자의 행운이 성립한 것이다. IMF의 부채는 갚았지만 더 큰 고통을 분담한 이들에 대한 부채는 여전히 갚지 못한 미완의 역사가 위기를 딛고 일어서는 선형적 승리 서사로 대체될 때, 오락물로서의 레트로는 안일한 역사 재현에 그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왜곡한다.
주인공 태풍이 부모의 재력으로 명품 셔츠를 입고 밤마다 클럽을 다니던 압구정 도련님인 건 우연이 아니다. 위기 극복의 주체는 누구인가. 승리의 주체는 누구인가. 무엇보다, 기억의 주체는 누구인가. 당장의 국가적 위기는 견뎌냈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중산층에 올라갈 수 있다는 계층 이동의 상상계는 무너졌고, 생존한 상위 중산층은 공고한 지위 세습의 성벽을 쌓았다. IMF 사태를 기억하는 방식은 현재의 모순을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IMF 위기 극복의 서사가 애초에 상위 중산층이었던 태풍이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자리를 되찾기 위한 오디세이로서의 여정으로 그려질 때, 이 고난은 오디세이에게 그러했듯 그가 되찾을 지위에 대한 정당성을 증명한다. 말하자면 이 위기는 역사의 경로에서 잠시 경험한 선로 이탈일뿐, 사필귀정 본래의 방향으로 돌아올 것이다. IMF 사태는 고도성장의 모순이 폭발해 여전히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비가역적인 상처가 아니라, 현재의 상위 중산층이 극복해 자신의 자리를 정당화하는 과거의 모험담이 된다. 그들이 그렇게 과거를 전유해 잘난 척을 하고 싶다면 어쩔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관광 상품으로 시청자를 수동적인 관광객의 자리에 놓겠다면 그것만은 사양하고 싶다. 경제 주권만큼 뺏겨선 안 되는 것이 있다면, 기억의 권리이므로.
<위근우 칼럼니스트>
백범 김구는 1947년에 ‘나의 소원’을 쓰면서, 이것은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을 위함이라고 말했는데, 백범이 꿈꾼 진정한 독립은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하는 일이었다. ‘나의 소원’에는 요즘 너도나도 입에 올리는 “아름다운 나라”와 “높은 문화의 힘”이 언급된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장이 포함돼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로 시작되는 이 장에서 백범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회자되는 현실의 맥락에 최근 전 세계적으로 메가 히트를 치고 있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있다. 뉴스를 통해 접한 바로는 이 애니메이션이 외국 관광객까지 불러들이고 있다니 과연 ‘문화의 힘’이 세긴 세다.
K컬처 환호 속 기초예술은 ‘홀대’
이른바 K컬처가 세계적으로 위세를 떨치는 것은 꽤 된 일이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를 열광시키는 일은 국민으로서 기분 나쁠 일이 아니다. 도리어 긴장의 끈을 놓치면 문을 두드리는 국수주의를 경계해야 할 정도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지만 그것이 꼭 긍정적으로 발현되는 건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세계인들의 눈길과 마음을 끌어당기는 K컬처와는 달리 정작 외면받는 우리의 기초 문화예술 문제에 관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들어서야 순수 기초예술을 언급했지, 그동안 내내 돈 되는 문화 ‘산업’의 중요성을 역설해왔으며 그에 걸맞은 사람들을 중용했다. 유튜브로 우연히 시청한 어느 국무회의에서는 순수 기초예술에 대한 질의가 영화로, 그다음은 먹방으로, 그다음은 치킨벨트로 이야기가 번져가는 슬픈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어쨌든 대통령이 순수 기초예술이 뒷받침돼야 문화강국이 지속된다고 강조했으니 기다려보자는 낙관론이 주위에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이 대통령 말대로 펼쳐질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실감하는 기초 문화예술의 상황이 너무 안 좋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각 자치단체 산하 문화재단의 관료화가 너무 깊게 진행되었다는 소리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지원 정책이 이미 ‘스타 프로젝트’로 변질됐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가 하면, 지난 9월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발표한 문학나눔 지원도서 사업 진행이 눈에 띄게 더뎌졌는데도 그것을 어디에서도 관리, 감독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무엇보다도 책 내서 빚 먹고 산다는 자조가 퍼진 출판계는 이미 고사 상태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정작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아름다운 나라’ 타령만 하고 있다.
그런데 백범이 말한 ‘아름다운 나라’는 대중문화 수출로 돈 잘 버는 나라를 뜻하는 게 아님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도리어 백범은 지나친 물질적 부를 경계하기까지 했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으며 나아가 인의와 자비, 사랑의 마음만 있으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백범의 소원은 돈이 아닌 ‘자유’
백범이 말한 “높은 문화의 힘”은 비록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우리에게는 세계사를 바꿀 문화적 잠재력이 풍부함을 믿자는 독려의 말이면서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의 오늘날 형편이 초라한 것을 보고 자굴지심을 발하여 우리가 세우는 나라가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할 것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모욕하는 일이다”라고 쓰기도 했다. 백범이 말한 ‘아름다운 나라’는 돈 되는 문화 산업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고유의 문화를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를 돕는 일”을 하는 나라이며 사실 이것이 문화의 참된 역할이기도 한 것이다.
과연 우리 대중문화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것은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현실이 자본주의임을 감안하면 대중문화의 교역이 불가피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기초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문화 산업이 생산하는 문화 상품만의 소비를 장려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나 정부의 책무라고 보기 어렵다.
고대 아테네 민주정도 지나친 물질 과잉과 그것을 지키자는 그릇된 애국주의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로 상징되는 건강한 비판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자 그의 제자 플라톤이 드디어 철인 왕도 정치를 주장하게 되었는데, 플라톤을 전적으로 그리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사상의 반동은 ‘지나친’ 물질주의를 먹고 자라기도 한다. 오늘날은 특히 인공지능(AI)이 그것을 성찰할 정신의 역할을 좀먹고 있다. AI의 흐름을 현재로서는 막는 게 쉽지 않다면, 그에 맞서는 “높은 문화의 힘”을 길러야 이만한 민주주의라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높은 문화의 힘”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쉽게 골다공증에 걸리고 만다. 백범이 말한 ‘아름다운 나라’는 정신적 방만과 나태를 불러오는 물질의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가 넘치는 나라였다!
영국 리버풀. 프리미어리그 명문구단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도시다. 내 기억은 다르다. ‘혐오’의 도시로 남아 있다. 학창 시절 영국에 1년 머문 적이 있다. 당시 리버풀은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아시아인들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이 많을 때였다. 봉변을 당할 수 있다며 밤에는 홀로 다니지 말라는 권고가 한국 학생들 사이에 공유됐다. 리버풀은 1900년대 초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항만도시 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무역구조가 바뀌고 컨테이너선이 보급되면서 리버풀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1970년 수만명의 항만노동자와 조선소, 창고업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1981년에는 폭동까지 일어났다.
이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한국인 등에게 돌렸다. 노동자를 쥐어짠 저임금, 광범위한 정부의 수출보조금 지원 등을 통해 아시아 개도국이 불공정 경쟁을 한다고 봤다. 이는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 당시 당국에 신고한 공화당원 토리 브래넘의 생각과 같다. 그는 “(구금이) 한국인들에게도 좋다. 그들은 (최저임금도 제때 받지 못하는) 노예 같은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은 우리의 성취를 ‘밤잠 자지 않고 일한 근면·성실’에 두었지만 리버풀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에게 자기 밥그릇을 반칙으로 빼앗는 ‘어글리 코리안’일 뿐이었다. 비단 리버풀뿐 아니었다. 맨체스터, 버밍엄 등 쇠락한 공업도시의 분위기는 다 비슷했다. 그즈음 영국에서는 실직한 전직 철강소 노동자들이 스트립쇼를 공연한다는 영화 <풀몬티>가 화제가 됐다.
서울 명동과 광화문 일대에서 벌어지는 혐중 시위는 그때의 기억을 소환시켰다. 분노에 찬 목소리, 혐오스러운 구호는 한쪽으로는 위협으로, 다른 한쪽으로는 억울했던 그때 그 느낌을 되살렸다. 혐오스러운 문구와 음모론에 기댄 팻말과 노골적인 집단행동은 그때를 능가한다. 특히 거대 여당의 주요정치인까지 참전해 혐오정서를 퍼트리는 것은 전례 없던 일이다. 최근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코스피 상승이 ‘희한하다’며 그 배후로 중국 자본을 지목하기까지 했다. 물론 ‘증거는 없다’고 했다. 당시 영국 정치인들은 혐오정서가 확대되는 것을 경계는 했다.
싫어하고 미워함. 국어사전이 정의한 혐오다. 30년 전 리버풀의 혐한이나 지금 한국의 혐중은 닮은꼴이다. 자신이 쇠락할 때 느끼는 상실감과 두려움을 상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혐오가 무서운 것은 전염성이 크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은 한 명의 마녀를 사냥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군중은 다음 대상을 찾게 마련이다.
최근 온라인상에는 한국 대학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혐캄보디아가 부상하고 있다. 캄보디아 내 발생한 한국인 상대 범죄에 대한 분노가 캄보디아 혐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달리 그 기저에는 ‘우리의 공적개발원조까지 받는 나라가 감히’라는 정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 한국 관광객 대상 납치사건이 아닌 범죄조직이 연루된 사건이라는 데서 들여다볼 것이 많다. 캄보디아는 ‘피의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혐오는 혐오로 되돌아온다. 이미 중국에서 혐한도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국민적 자존감이 높아졌고, 여기에 사드배치까지 맞물린 결과다. 캄보디아에서도 캄보디아를 혐오하는 동영상들이 유튜브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혐한류 정서가 꿈틀대고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는 한류의 주요 소비국 중 한 곳이었다.
‘K’의 힘으로 어느 때보다 한국인의 위상이 높아졌다지만 ‘혐한’이 존재하는 곳은 여전히 많다. 일본 서점가 한쪽에는 혐한 서적이 비치돼 있다. 최근 한·일관계가 다소 해빙이 되어서 그렇지 언제고 혐한은 전면으로 부상할 수 있다. 미국에 연수 중인 지인은 최근 미국에서 ‘아시아 여성 인종차별’을 당했다며 속상해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 마가(MAGA)가 기승을 부리면서 미국 내 혐오 흐름이 요즘 심상치 않다.
세계를 무대로 먹고살아야 하는 한반도의 운명상 ‘혐오’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 될 것이 하등 없어 보인다. 하물며 우리가 그 진원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급성장하는 상대를 경계하고 견제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대응이 혐오는 아니다. 혹시나 그 기저에 몇 줌 안 되는 국내정치의 이익이 달려 있는 것이라면 심각한 자해행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외국인 혐오 끝에 브렉시트를 택한 영국이 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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