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김재규의 ‘10·26’은 민주주의 회복 위한 것이라는 진실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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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준영 작성일25-07-07 06:01 조회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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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이 16일 열린다. 재심 청구 5년, 사형 집행 45년 만이다. 앞서 지난 2월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이재권)는 “계엄사령부 수사관들이 김재규를 수사하며 수일간 구타와 전기고문 등을 한 점을 인정할 수 있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했다. 검찰은 즉시항고했지만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가 기각하면서 10·26의 진실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45년 만에 재연된다.
쟁점은 김재규가 ‘내란’을 통해 대통령이 돼 정권을 장악하겠다는 목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했는가다. 당시 김재규의 죄목은 ‘내란목적살인’과 ‘내란수괴미수죄’였다. 하지만 김재규는 일관되게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유신의 심장, 독재의 정점인 박정희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그의 법정 최후진술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10·26 재판 진행 절차의 위법성도 논쟁거리다. 45년 전 김재규의 변호인 중 한 명이었던 안동일 변호사(85)는 앞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보안사 시간표에 따른 재판 진행은 한마디로 개판이었다”며 “형사소송의 절차적 정의는 깡그리 무시되고, 당사자의 방어권과 변호인의 변호권은 설 자리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재심 사건에서 김재규 측 법률대리인은 이상희(53·사법연수원 28기)·이영기(68·33기)·조영선(59·31기) 변호사다. 이들은 2008년부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긴급조치변호단에서 활동하며 긴급조치 무효·위헌 결정을 이끌어냈고, 다수 피해자의 재심 및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인터뷰는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지향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지난 2월19일 서울고법의 재심 개시 결정이 나고 석 달도 안 돼 대법원에서 검찰의 즉시항고를 기각했어요. 재심 청구 4년 만에 첫 심문기일을 잡은 것에 비하면 정말 빠른 결정이에요.
“예상 못했어요. 1년은 걸릴 줄 알았거든요.”(조영선)
“재심 청구가 가능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수사검사나 수사관이 구타와 고문 등으로 유죄가 확정됐을 때예요. 재심 개시 결정을 한 서울고법은 ‘(고문 수사관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돼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지만, 기록에 의해 범죄는 증명된다’고 덧붙였어요. 재심 사유가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대법원이 달리 판단할 여지가 없었을 거예요.”(이영기)
- 법원이 인정한 수사관들의 폭행과 가혹행위 외에, 김재규 측이 주장하는 또 다른 재심 청구 사유는 뭔가요.
“가장 중요한 게 박정희의 사망을 원인으로 1979년 10월27일 발령된 비상계엄이 선포 요건(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을 못 갖춰 위헌·위법하다는 점이에요. 이런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에 기해 법령상 근거 없이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고 합수부 군사법경찰관과 군검사가 수사와 기소를 했으니 모두 위법한 일이죠. 설령 비상계엄이 유효하다고 해도, 김재규의 범행은 비상계엄 선포 전이고, 더구나 김재규는 민간인이에요. 따라서 일반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하는데, 관할권 없는 군법회의에서 재판이 이뤄졌어요.”(조영선)
“재판 진행 절차의 위법성과 재판부의 허위공문서 작성도 저희가 강하게 주장했어요. 1979년 12월4일 시작된 1심 재판은 17일 만에 사형 선고가 내려졌고, 1980년 1월22일 시작된 항소심 재판은 단 세 차례 열리고 7일 만에 끝났어요. 대법원 판결은 그해 5월20일에 있었고요. 그 과정에서 변호인들은 김재규와 충분히 접견할 수 없었고, 공판조서를 1심이 끝날 때까지 전혀 볼 수 없었어요. 공판조서의 기재 내용과 보안사가 몰래 재판 과정을 녹음한 테이프에 담긴 내용을 일일이 비교한 결과 공판조서가 허위로 작성됐음도 확인했어요.”(이상희)
- 관할권 문제도 그렇고, 재판 절차가 그렇게 엉터리로 진행됐다면 당시의 재판, 판결 모두 무효겠군요.
“무효죠.”(이상희)
- 재심의 궁극적 목적은 뭔가요.
“법률상 목적은 내란목적살인이 아니라는 판단을 받는 거죠. 김재규는 재판 과정에서 줄곧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민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 유신체제의 핵심인 박정희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어요. 10·26 전에도 세 차례 박정희 살해 계획을 세웠다가 접었다는 것이나, ‘민주민권자유평등’ ‘자유민주주의’ 같은 붓글씨를 쓴 것 등 당시 행적을 봐도 유신독재에 조종을 울리겠다는 의지가 분명했어요. 자신이 정권을 잡겠다는 생각을 한 일이 없다고도 했고요. 실제로 그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정권을 맡기려 했어요.”(조영선)
“김재규의 죄목인 형법 87조의 내란죄와 88조의 내란목적살인죄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것을 말해요. 여기서 폭동이란 적어도 한 지역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위력이 있어야 하죠. 그런데 그렇게 볼 증거는 전혀 없어요. 300평도 안 되는 궁정동 안가에서 몇 사람이 사망한 사건이잖아요. 당시 대법원에서도 내란죄에 대해선 8 대 6으로, 6명의 대법관이 내란죄 성립이 안 된다고 판단했어요.”(이영기)
“형사 사건에선 범죄 사실에 대해 검사가 입증해야 해요. 그런데 당시 검찰이 제출한 증거라고는 주로 공동피고인들을 고문하고 불법으로 수사하면서 받아낸 진술뿐이에요. 군법회의도 전두환 신군부의 시간표에 따라 재판을 진행해 충분한 심리가 이뤄지지 않았고요. 그러니 검사의 입증은 실패했다고 봐요.”(이상희)
- 내란목적살인이 무죄임을 주장하기 위한 인적·물적 증거 방법은 뭔가요.
“10·26 재판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육성테이프, 10·26 직후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던 강신옥 변호사님과 안동일 변호사님이 기록한 10·26 재판 관련 기록을 제출할 거예요. 이를 통해 10·26 사건의 본질이 뭔지, 당시 재판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입증할 겁니다.”(이상희)
- 보안사가 불법으로 녹음한 10·26 재판 과정을 담은 육성테이프(53개)도 양이 방대하죠. 듣고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안동일 변호사님의 표현대로 한마디로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었어요. 피고인의 법정 진술이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수시로 저지되는가 하면 비공개 재판을 했어요. 범행 동기 진술도 검찰관이 번번이 제지하려 했고요. 당시 재판 과정을 실시간으로 스피커로 엿들은 계엄사 합수부 요원들이 법정으로 쪽지를 보내며 재판에 관여했다는 것 아닙니까. 육성테이프에 재판 과정을 엿들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녹음돼 있어요. 그 속에서도 김재규의 법정 육성에선 사나이다운 기개가 느껴졌어요.”(조영선)
“변호사들이 따박따박 김재규를 호칭할 때 김재규 장군이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군검찰이 막 항의하고 재판부도 장군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하죠. 그런데 태윤기 변호사님이 ‘우리 마음이다. 법에 뭐라 불러야 한다는 조항이 있느냐’고 반박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역사적 재판에 임하는 변호인들의 자세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 법정 분위기가 생생하게 느껴졌어요.”(이영기)
- 앞서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법원 심문기일에 증인으로 두 차례 나선 안동일 변호사도 증인으로 다시 부를 건가요.
“45년 전 김재규의 변호인들 중 유일하게 생존해 계시는 분이니 또 모셔야겠죠. 역사의 법정을 직접 목격하고 꼼꼼히 기록(<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 저술)하신 분이니까요. 10·26은 한국 현대사에서 유신독재의 종말을 가져온 분기점이 된 사건이에요. 그 진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어요.”(조영선)
- 재심을 통해 법원이 내란목적살인을 무죄로 판단한다면, 김재규의 명예 회복도 이뤄지는 건가요.
“재심 판결문에 어떤 게 담길지는 모르지만, 10·26과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법적 평가와 사회적 평가, 역사적 평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해요. 김재규는 박정희가 유신 그 자체이니 박정희를 없애야 유신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10·26 상황을 내란으로 몰고 간 건 전두환 신군부예요. 법정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10·26과 김재규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재정립되고, 또 재심 결과에 따른 법적 평가가 비로소 명예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이상희)
“법원은 10·26이 내란목적이었느냐 아니냐 자체를 판단하는 것이지, 10·26의 동기, 예를 들어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거사였기 때문에’ 내란목적이 아니다라고는 판단하지 않아요. 이후 역사적 평가는 역사가들의 몫이죠.”(조영선)
- 10·26과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뭔가요.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 장악을 위해 내란죄를 덧씌운 정치적 재판의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박정희 정권의 본질을 규명하고, 김재규의 행위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것이었음을 밝혀야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한편으론 10·26에 대한 아쉬움이 커요. 박정희는 이렇게 살해당할 게 아니라 마땅히 법정에 세웠어야 했어요. 그랬다면 우리나라의 과거사 청산이 빨리 진행됐을 것이고, 민주주의도 좀 더 빨리 정착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이상희)
“정명(正名), 즉 합당한 이름을 불러줘야 해요. 김재규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했고, ‘박정희를 쏘았지만 그 무덤 위에 설 만큼 타락하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그가 박정희 군사정권 내내 공포정치의 심장인 중앙정보부 수장(1976년 12월~1979년 10월)이었던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순 없겠죠. 하지만 유신체제와 긴급조치를 고쳐보기 위해 무한히 노력했다고 말했어요. 그가 고뇌와 갈등 속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박정희를 저격한 평가는 분명히 있어야 해요.”(조영선)
김재규는 “부마항쟁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태가 더 악화되면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때 차지철(대통령경호실장)은 “캄보디아에선 300만명 정도 죽여도 끄떡없었는데 데모대원 100만~200만명 정도 죽여도 걱정 없다”고 한술 더 떴다고 전했다. 이영기 변호사는 “그런 일련의 과정만 보더라도 김재규는 우리 국민의 더 큰 비극을 막아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 김재규 외에도 박선호(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흥주(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 이기주(궁정동 안전가옥 경비원), 김태원(궁정동 안전가옥 경비원), 유성옥(궁정동 안전가옥 행정차량 운전사)이 10·26 가담자로 사형당했어요. 이들에 대한 재심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유족분들의 동의가 있어야 해요. 김재규의 경우도 배우자 김영희씨와 따님이 계시지만 재심 청구를 하겠다는 의사가 없어 누이동생인 김정숙씨가 재심을 청구한 거예요.”(조영선)
- 왜 김재규의 아내와 딸, 그리고 당시 10·26 사건으로 사형당한 이들의 유족은 재심 청구를 하지 않은 걸까요.
“그게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분들은 두려운 거예요. 한국 사회에서 박정희는 신(神)과 같은 존재인데, 재심 청구는 신에 대항하는 거니까요. 게다가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이 여전히 건재하잖아요. 하지만 김재규의 재심 판결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다른 유족분들도 두려움에서 벗어나 재심을 청구할 용기가 생길 거예요.”(이영기)
지난 3월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지귀연)는 내란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 대한 구속을 취소하라고 결정하면서 김재규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 사례를 언급했다. “윤 대통령 측이 주장하는 구속 취소 이유와 관련, 공수처법 등 관련 법령에 명확한 규정이 없다”며 논란을 그대로 두고 형사재판 절차를 진행하면 김재규 사례처럼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심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12·3 불법계엄을 일으킨 윤석열 전 대통령도 김재규와 마찬가지로 내란우두머리죄로 재판을 받고 있어요.
“역사의 아이러니예요. 한쪽에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거사가 내란죄가 된 사건의 재심이 열리고, 다른 한쪽에선 민주주의를 탄압하기 위해 벌인 계엄이 내란죄로 재판받고 있으니까요. 저는 역사적인 이 두 사건 모두 민주주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김재규 재심 사건을 단순히 형사 절차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이를 통해 박정희 시대 말기 상황이 어땠는지, 민주주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고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라요.”(이상희)
- 12·3 불법계엄에 대해서도 내란이냐, 아니냐를 두고 법률가들 사이에서 견해가 엇갈린다죠.
“12·3은 명백히 내란이죠. 내란죄는 다수가 관여했느냐, 한 지역의 평온을 해쳤느냐가 핵심이거든요. 김재규의 10·26은 오직 김재규 혼자 계획한 일이에요. 범행을 실행할 때도 직전에서야 현장에 있던 몇 사람에게만 말했어요. 궁정동 안가에서 일어난 일이니 한 지역의 평온을 해친 것도 아니고요. 반면 윤석열의 12·3은 군경이 국회와 선관위에 무장 진입해 통제·봉쇄함으로써 한 지역의 평온을 해친 게 명확해요. 일부 법률가가 계엄령이 빨리 해제됐고 5·18처럼 구체적으로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란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동의할 수 없어요. 계엄령이 빨리 해제됐다고 해서 이미 저질러진 내란죄 성립이 부정되는 게 아니니까요.”(이상희)
“대한민국 역사를 보면 위기와 혼란 속에서도 결국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해 가는 것 같아요. 10·26 직후 전두환이 집권했지만 18년 후인 1997년 내란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잖아요. 12·3 내란사태가 6개월 만에 정상화된 것도 민주주의를 위한 국민의 저항정신에서 비롯됐다고 봐요. 그래서 10·26의 진실을 바로 보는 게 중요해요.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며 장기집권을 꾀한 박정희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권. 그게 김재규의 10·26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같은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게 우리가 재심을 하는 목적이자 방향이죠.”(조영선)
3일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 입후보 등록이 시작되면서 선거전이 본격 개시됐다. 이번 선거 결과는 쌀 가격 급등, 대미 무역협상 등으로 국정운영 시험대에 오른 이시바 시게루 내각에 대한 중간 성적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전체 248석 중 절반인 124석과 보궐 1석 등 총 125석(지역구 75석·비례 50석)을 뽑는 이번 선거에 약 520명이 입후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투·개표일은 오는 20일이다. 선거운동은 이날부터 선거 전날까지 17일간 이뤄진다.
자민·공명 연립 여당이 과반 의석을 유지할지 주목된다. 현재 자민당과 공명당 참의원은 각각 114명, 27명이다. 양당은 50명 이상의 당선자를 배출해야 이번 선거에서 교체되지 않는 75석을 더해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참의원 임기는 6년이며 3년마다 절반 의석에 대해 선거를 한다.
자민·공명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 이시바 총리에 대한 퇴진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양당은 지난해 11월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465석 중 절반 이하인 220석(자민당 196석·공명당 24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지난달 22일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도 자민당은 기존보다 9석 줄어든 21석을 얻었다. 역대 최소다.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이시바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과반 확보가 목표라고 밝혔지만 연립 여당에 대한 여론은 악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유권자 50.2%는 ‘연립 여당의 참의원 과반 유지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여야 경합지는 수도 도쿄(자민당 35%·입헌민주당 30%)와 제2 도시 오사카(일본유신회 33%·자민당 29%), 공업지대가 몰린 와카야마(자민당 32%·입헌민주당 31%) 등 선거구다. 와카야마에는 자민당을 탈당한 무소속 후보가 출마해 자민당 지지층의 표가 갈라졌다.
이번 선거의 주요 쟁점은 고물가 대책이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현재 8%인 식품 소비세를 내년부터 1년간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국민민주당과 일본공산당 등 다른 야당도 소비세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자민당은 소비세가 사회보장 재원이라며 감세안에 반대하고 있다. 대신 국민 모두에게 1인당 지원금 2만엔(약 19만원)을 주고 어린이와 저소득층에 2만엔을 더 나눠주는 방식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공약했다. 1년째 고공행진하고 있는 쌀값을 내리기 위해 쌀 유통을 보다 투명하게 바꾸는 개혁안도 내세웠다.
여당은 전쟁 포기, 전력 불보유 등을 밝힌 헌법 9조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개헌도 추진하려 한다. 하지만 야권은 개헌이 평화헌법 취지와 어긋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결혼하면 부부가 같은 성을 쓰도록 강제하는 ‘부부동성제’도 쟁점이다. 입헌민주당은 성평등을 위해 부부가 다른 성을 쓸 수 있게 민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명당은 가정마다 이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선택적 별성제’를 지지한다. 자민당은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한 의견이 나뉘고 있다.
홍주문화관광재단은 오는 12일 오후 6시 월산상가 일원에서 ‘월산상가 포차데이’를 개최한다고 4일 밝혔다.
행사장에선 한여름에 즐기는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방문객들은 음식과 함께 다양한 공연과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주요 행사 내용으로는 전문 DJ가 진행하는 DJ 뮤직카와 거리 버스킹 공연, 생생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인생네컷 포토부스, 눈 내리는 겨울 분위기에서 인형탈 캐릭터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포토존 등이 있다.
방문객은 선착순으로 루돌프 머리핀을 받을 수 있다.
월산상가 식당 이용객을 대상으로 한 영수증 이벤트도 진행된다. 추첨을 통해 1등(1명)은 에어팟을 받을 수 있다.
후순위 당첨자에게는 월산상가 식당 이용권이 주어진다.
행사엔 월산상가 12개 업체가 참여해 각자 특색 있는 먹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종합예술협동조합 ‘콩콩콩’은 크리스마스 테마 만들기 체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최건환 홍주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는 “문화예술의 가치를 확산하고 상가 활성화를 위해 진행되는 행사인 만큼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주 밝은 베이지가 한 방울 섞인 오프 화이트소매통과 품, 길이가 충분히 넉넉한
옷 잘 입는 사람들은 똑같은 셔츠를 입어도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 그들의 스타일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단한 브랜드나 과감한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말로 딱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조금 다른 느낌이 있다. 그 미묘한 차이가 남과는 다른 특별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오늘은 옷 잘 입는 사람의 ‘한 끗 차이’, 여름 셔츠를 고르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화이트 셔츠를 ‘까다로운 기본’이라 부르고 싶다. 무난한 듯 보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옷이다. 셔츠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의 태도와 감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사진가 피터 린드버그가 말리부 해변에서 촬영한, 헐렁한 화이트 셔츠를 입은 모델들의 사진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햇살, 바람, 바다 그리고 셔츠. 그 장면은 모델보다도 셔츠 자체의 분위기를 먼저 기억하게 만든다. 셔츠의 주름, 여밈, 걷어 올린 소매 하나까지. 그 사진이 오랜 세월동안 회자되는 이유는, 결국 셔츠가 만들어낸 인상 때문일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가장 옷 입기 까다로운 계절은 한여름과 한겨울이다. 특히 한여름에는 걸칠 수 있는 옷의 수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멋을 낸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한 벌의 상의가 스타일 전체를 결정짓는 데 더욱 중요해진다. 이때 화이트 셔츠는 멋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거의 유일한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회의, 약속, 모임, 바닷가까지 어떤 TPO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격식과 여유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무엇보다 셔츠는 장소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옷이다. 하나만 잘 입어도 ‘옷 잘 입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충분히 줄 수 있다.
수많은 셔츠 가운데 왜 화이트 컬러를 선택해야 하는지, 왜 코튼 셔츠여야 하는지, 코튼 중에서도 어떤 두께와 짜임이 적절한지, 그리고 어떤 핏을 고르면 좋을지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자.
명품 브랜드의 화이트 셔츠 컬렉션은 종종 캡슐 컬렉션으로 기획되어 선보인다. 셔츠 하나에 소재, 재단, 구조적 완성도를 담을 수 있어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 샌더(Jil Sander)는 커프스와 칼라에 집중된 디테일, 와이드 슬리브의 화이트 셔츠를 매 시즌 정기적으로 선보인다. 더 로우(The Row)는 에센셜 라인에서 극도로 고급스러운 소재로 만든 화이트 베이식 셔츠를 제안한다. 프라다(PRADA) 역시 매 시즌 화이트 셔츠를 반복적으로 선보이며, 정제된 라인부터 오버사이즈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기본 아이템으로 구성한다. 그만큼 화이트 셔츠는 패션의 기본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화이트 셔츠는 모두 같은 화이트일까? 흔히 ‘화이트’라고 하면 순백색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매우 다양한 톤이 존재한다. 미세하게 다른 톤이 섞인 오프 화이트, 노란 기가 감도는 웜 화이트, 푸른빛이나 회색빛이 섞인 쿨 화이트 등 화이트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이 중 하나를 추천한다면 단연 오프 화이트다. 오프 화이트 컬러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무난하게 어울리며 가장 고급스럽고 세련된 인상을 주는 톤이다. 아주 밝은 베이지가 한 방울 섞인 색감으로, 쉽게 말해 ‘우유 컬러’를 떠올리면 된다. 상의로 화이트 셔츠를 선택했다면, 하의는 어떤 컬러와도 무난하게 어울려 스타일링이 한결 수월해진다. 정장 바지, 데님, 스커트 등 어떤 아이템과도 잘 어울리는 만능 아이템이 바로 화이트 셔츠다.
여름철 하면 반소매 셔츠가 가장 입기 편하겠지만, 진짜 멋을 아는 사람이라면 긴소매 셔츠를 선택할 것이다. 긴소매 셔츠는 실내 여름철 냉방으로 인한 체온 조절에 매우 용이하다. 더운 실외에서는 소매를 걷어 올려 연출하면 시원함은 물론 스타일까지 함께 살릴 수 있다. 옷 잘 입는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들이 소매를 어떻게 걷는지를 보는 것이다. 소매를 반듯하게 접어 둘둘 걷어 올리면 자칫 여름철 군인을 연상시킬 수 있다. 반면, 멋을 아는 사람들은 무심한 듯 커프스만 툭 접어 자연스럽게 쓸어 올린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바로 ‘소매통’이다. 소매를 멋스럽게 걷어 올리려면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소매통이 필요하다. 팔에 타이트하게 붙는 소매는 아무리 걷어도 멋스럽기가 어렵다. 적당히 여유로운 소매통은 스타일리시한 디테일을 완성해주는 ‘한 끗’이 된다.
무난하면서 특별한 ‘까다로운 기본’더운 날씨, 멋과 실용성 동시에 만족스타일·체온 조절엔 ‘긴소매’ 유리오버핏의 포플린 코튼 소재 이상적
그리고 이 ‘한 끗’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오버핏 실루엣이다. 여유로운 소매통에 오버핏의 몸통이 더해진 셔츠야말로 가장 자연스럽고 추천할 만한 핏이다. 허벅지의 3분의 1 정도 길이에, 품은 넉넉해서 어떤 체형에도 잘 어울린다. 단추 여밈에 대해 말하자면, 너무 많이 풀면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세 개 정도 푸는 것은 어떤 자리에서도 무난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렇다면 여름용 화이트 셔츠에 가장 적합한 원단은 무엇일까? 여름철 셔츠에 사용되는 원단으로는 코튼, 리넨, 레이온, 햄프, 폴리에스터, 실크 등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클래식하면서도 관리가 쉬우며 트렌드에 구애받지 않는 원단은 단연 코튼이다.
직조 방식으로는 촘촘한 평직으로 짜인 포플린(Poplin) 코튼이 대표적이며, 특히 얇은 60수 이상의 포플린이 여름 셔츠에 이상적이다. 물론 코튼 중에서도 최고급으로는 35㎜ 이상의 롱 스테이플 면으로 만든 수피마 코튼이나 이집션 코튼이 있다. 의류용으로는 보통 20수(1g의 면화로 20m까지 실을 뽑았다는 뜻)부터 시작되며, 200수의 극세사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다만 100수 이상의 코튼은 데일리하게 입기에는 너무 얇고,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대의 원단이다. 따라서 실용성과 스타일을 모두 고려했을 때, 비침이 적어 단독으로 입기 좋고 시원한 60수 포플린 코튼이 가장 실패 없는 선택이다. 게다가 코튼 포플린은 리넨처럼 구김이 과하지 않아 자연스러운 멋을 연출하기에도 좋다.
이제 소재를 파악했으니, 쇼핑은 한결 쉬워진다. SPA 브랜드의 제품 필터에서 ‘포플린’, ‘화이트’만 선택해보자. 멋진 화이트 셔츠를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올여름, 특별한 옷을 따로 장만할 계획이 없다면 오버사이즈 화이트 코튼셔츠 한 벌쯤 구매해보는 건 어떨까? 단추는 위에서 세 개 정도 자연스럽게 풀고, 소매는 무심한 듯 커프스에서 한 번 접어 쓸어 올리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어떤 장소에서도 은은한 멋을 살릴 수 있는, 실용적이면서도 과하지 않은 여름 스타일이 완성될 것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노동자의 날, 내가 사회에 발붙인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권미경이 1991년 5월 1일 노동절에 쓴 일기 한 문장이다. 권미경이 태어난 건 1969년 6월 24일이다. 전북 장수에서 나 1971년 부산으로 이주했다. 1982년 2월 아미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다음 달 들어간 곳은 중학교가 아니라 보세 공장이다. 열세 살 때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배우려고 했다. 공장 일을 하며 동주여자중학교 야간부를 다녔다. 1985년 졸업했다.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못했다. 공장을 계속 다녔다. 1985년 3월~1987년 10월 대일산업, 같은 해 10월~1988년 12월 청산, 1989년 1월~1990년 3월 세원에서 미싱사로 일했다. 그해 6월 대봉 재봉과로 들어갔다. 독일 아디다스 제품을 OEM방식으로 생산·수출하던 회사다.
이듬해 노동은 유달리 고됐다. 1991년 11월 14일자 일기에 쓴 구절은 다음과 같다. “노동자 생활 10년 가까이 해오면서 처음으로 결근계라는 것을 내어보았다. 참으로 억척스럽게 살아온 세월이 아니었나 싶다.”
몸이 괜히 아팠던 게 아니다. 권미경이 열세 살 소녀 노동자로 일한 뒤 처음 결근할 정도로 1991년 하반기 ‘노동 착취’는 고조로 치달았다. 권미경은 10월 11일자 일기에 “몸이 정신을 전혀 뒷받침해 주지를 못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피로 같은 걸 별로 느끼지 못했었는데, 요새는 몸이 쑤시고 저리고 하기야 사람이 일을 그렇게 죽어라 하는데 멀쩡하면 어디 사람인가 기계지”라고 썼다.
“노동강도가 갈수록 더 심해져 간다. 신발산업 해외이전 문제까지 들먹여가며 아무것도 모르는 내 동료들을 그들은 희롱하고 있다”고도 적었다.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이윤을 챙긴 기업주들은 신발 산업 위기에서 혁신보단, 노동자들을 더 쥐어 짜내는 손쉬운 방식을 택했다. 위기가 일을 덜 해서 생긴 양 몰아붙였다. ‘구사’와 ‘애사’의 이름으로 착취를 강요하고, 정당화했다.
최저임금 수준 정도만 받고 일했다. 최저임금 심의위원회가 1990년 10월 확정한 1991년 최저임금은 월 19만 2790원이다. 10년 차 숙련 노동자 권미경이 1991년 1월 받은 월급은 28만원인데, 연장수당 등을 뺀 기본급은 18만원이다.
전경련 등 당시 경제 5단체는 1991년 11월 22일 “10% 절약 더 하기, 10% 저축 더 하기, 10% 생산성 더 제고하기, 10% 수출 더 증대하기, 자발적으로 일 더 하기” 등 ‘5대 더 하기 운동’을 발표했다. 이들이 주최한 ‘기업체 5대 더 하기 운동 전진대회’에 당시 상공부 차관과 공단이사장도 참석했다. ‘착취의 정경 유착’였다. ‘애사’ ‘구사’에 ‘애국’이 더해졌다.
부산의 여러 공장 사장들은 ‘상여금 반납’, ‘토요일 연장 근무’, ‘30분 더 일하기’를 강요했다. 권미경이 다니던 대봉도 그해 11월 1일부터 목표량 달성을 위해 작업 강도를 올렸다. 11월 말엔 아디다스 새 신발 생산 목표치를 50%가량 늘렸다. 관리자들은 초시계를 가지고 다니며 목표랑 달성을 쪼았다.
권미경은 작업 목표량을 채우지 못해 수 차례 정신 교육을 받았다. 훈시를 듣느라 통근 버스를 타지 못한 적도 여러 번이다. 저녁밥도 챙기지 못해 연장 근로를 하며 잠깐 귤과 빵을 먹다가 간부에게 들켜 혼이 나기도 했다.
사측은 12월 들어 목표량 달성을 더 재촉했다. 연장 근로도 강요했다. 그달 6일 권미경의 19세 동료가 품질 불량 때문에 질책을 받았다. 조장과 반장이 이 동료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걸 보고 권미경은 울먹이며 “이곳이 바로 지옥이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권미경은 이날 오후 4시8분쯤 회사 옥상으로 올라갔다. 4시10분쯤 부산 신평동 대봉 본사 지하식당 앞 공터에서 발견됐다. 고신의료원에 옮겨진 4시24분 이미 숨진 상태였다. 그때 권미경 팔뚝엔 검정 볼펜으로 쓴 글이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억압의 땅에 묻지 말고 그대들 가슴 깊은 곳에 묻어 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으리.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마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공장 간부들은 권미경을 권공순으로 부르곤 했다. 남성 노동자들은 ‘박공돌’ 등으로 호칭했다.
권미경은 늘 공부했다. ‘광장도서원.’ 1991년 봄 가입한 사하 공단 지역 노동자 독서 모임이다. 권미경은 광장도서원 노동 분과에서 노동 착취 같은 한국 사회 현실 문제를 깨닫는다. 사회, 노동, 여성에 관한 자각, 결의를 일기에 적어 내려갔다.
1991년 5월 6일자 일기에 이렇게 썼다. “그녀들만이 지니고 있는 미소가 날이 갈수록 어둡게 변해가는 것 같다. 한창 자연 속에서 꽃사슴처럼 뛰어놀아야 할 소녀들이 여기, 이곳 모든 게 제한되어 있는 작업장에서 노동에 그녀들의 꿈이 시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너무나 안타깝고 애처롭다. 내가 그녀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건 당일 질책을 받은 동료 노동자는 야간학교 학생이었다. 자신보다 어린 여성 노동자들에 연민과 동지애를 느꼈다.
사망 하루 전인 12월 5일자 일기엔 “바로 내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고자 할 때만이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기지 않고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해 10월 11일자엔 이렇게 썼다. “우리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싸우다 싸우다 피 터져 죽는 한이 있어도 그들과 함께 싸우고 싶다. 그래 짓밟아라! 니네들이 아무리 밟고 억압해도 우린 더욱더 강하게 다시 일어날 테니까.”
여성 문제를 자본주의 사회 노동 현장에서 깨달은 페미니스트였다. 7월 5일자 일기 제목은 ‘여성해방을 되새기며’다. “진정하고 아름다운 참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한 남성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며 나가고 싶은 한 여성”을 “나 스스로 과감하게 거부한다”고 적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리 여성들의 소박한 꿈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지금에 어찌 한 나약한 여성으로 안주해버린단 말인가. 지금의 자본주의 구조가 깡그리 무너지기 전에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결단코 나약한 여성이 아니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성으로 또는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서 똑같은 높이에 평등하게 설 수 있는 그 날까지 힘차게 걸어 나갈 것이다. 노동해방과 여성해방 그날까지.”
권미경은 1남 3녀 중 장녀였다. 열세 살 때 첫 노동을 시작할 때 홀어머니는 완구 공장에 다녔다. 오빠도 어렸을 적부터 노동을 했다. 아버지는 이전 사망한 듯하다. 권미경은 1991년 11월 14일자 일기에 “묵묵히 땀 흘리고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순박하게 살던 울 아버지, 이 사회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마음이 여리고 강하지 못한 울 아버지는 그렇게 쓰러져갔다. 불쌍한 울아버지, 울엄마”라고 적었다. 권미경은 가족의 고난을 “사회에서 소외되고 멸시당하며 살아야 하는 빈민들”의 수난과 이어 생각하려 했다.
비극은 이어졌다. 오빠는 동생의 죽음과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93년 3월 11일 부산 천마산 중턱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산일보는 “동생이 그렇게 비참하게 갔는데 내가 살면 무엇하느냐며 심하게 비관해 왔다”(1993년 3월 12일자)고 전했다
세상은 권미경 죽음 전 공장에서 벌어진 일을 몰랐거나, 알면서도 문제 삼지 않았다. 애초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 대봉 사측은 권미경의 죽음을 두고 “외부불순세력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고 매도했다. 대봉의 대표이사는 권미경이 죽기 1주일 전 ‘수출 유공자’로 동탑 산업훈장을 받았다. 매일경제는 11월30일자 ‘대봉 올수출 2천만불 초과달성’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신발업체로는 드물게 노사화합, 시장다변화, 신소재개발, 기계 및 공장자동화, 품질고급화에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고 적었다. MBC는 사망 다음달인 1992년 1월 초 근로 시간 연장, 토요 휴무제 잠정 폐지 등 부산 신발업계의 ‘일 더하기 운동’을 ‘일하는 풍토’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당시 정부와 언론, 기업이 이윤과 착취의 대연정을 이루었다. 이 대연정은 무너진 적이 없다. 착취와 해고, 죽음에 관한 문제라면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지금 여기저기서 노동자들이 죽고, 고공농성을 해도 ‘이윤’ ‘수출’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 관행은 지금껏 이어진다. 때로는 ‘국뽕’과도 연결한다. 파리바게뜨가 프랑스에 빵집을 내면 ‘K-베이커리’로 칭송하듯 말이다.
권미경 장례는 1991년 12월 22일 ‘부산 노동자장’으로 치러졌다. 경상남도 양산시 솥발산 노동 열사 묘역에 묻혔다. 이듬해 4월 5일 신발 산업 노동자들은 ‘고무노동자협의회’를 결성했다.
권미경의 투쟁은 노동사학자 남화숙의 <체공녀 연대기 1931~2011>(남관숙 옮김, 후마니타스)에도 실렸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인 박정혜는 2일 기준 541일째, 세종호텔 정리해고 노동자 고진수는 140일째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 김종목 기자 jom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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