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마케팅 [김봉석의 문화유랑]정통과 파격, 모두를 아우르는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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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준영 작성일25-11-24 20:19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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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영화 흥행 순위에서 흥미로운 점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다. 지난 9월24일 개봉한 <체인소맨: 레제편>은 312만명으로 6위이고, 3월 개봉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은 94만명이다. 그 외에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초화려!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그림이야기> 등 익숙한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10만 넘는 관객을 기록했다.
돌이켜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 늘 인기였다. 1967년 TBC의 한·일 합작 <황금박쥐>를 시작으로 1970년 <우주소년 아톰> 그리고 <마징가 Z>와 <요술공주 샐리> 등 일본 애니메이션은 세대를 넘어 한국 대중문화의 기저에 있었다. 1980년대에 폭력적이라며 로봇 애니 방영을 금지했어도 큰 영향은 없었다. 1990년대에는 <드래곤 볼>과 <슬램덩크> 중심으로 일본 만화 시장이 들끓었고 애니메이션도 화제였다. 다만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파괴력이 약했다. <명탐정 코난>과 <도라에몽> 등 아동 대상 애니 정도가 쏠쏠한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흐름은 변한다. 2023년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490만명을 기록했다. 1990년대에 만화 <슬램덩크>에 열광했던 3040 관객이 찾았고,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관객들까지 끌어들였다. 걸작은 시대를 초월해 감동을 주고, 잘 만든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 보는 오락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시네마’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소년만화의 ‘왕도’의 길을 걷는 작품이다. 한때 600만부를 발행했던 만화 주간지 ‘소년점프’는 <드래곤 볼> <원피스> 등 우정과 노력, 승리의 소년만화로 1980년대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강력한 적에 맞서 함께 싸우면서 친구가 되고, 승리를 바탕으로 성장해 더 강한 적과 맞서는 서사는 진부해 보일지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귀멸의 칼날>은 가족애를 바탕으로 직관적인 선악 구도와 대결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변주해 한·일 양국에서 올해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고전적 서사의 힘은 2025년의 대중에게도 유효하다.
<귀멸의 칼날>이 왕도를 걷는다면, <체인소맨>은 개성적인 아웃사이더다. <귀멸의 칼날>의 ‘탄지로’는 혈귀를 물리치고 여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리겠다는 목적이 분명하다. <체인소맨>의 ‘덴지’는 그저 배불리 먹고, 사랑하고, 오늘을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원초적이고 개인적인 욕망이 덴지를 움직인다. <체인소맨>의 작가인 후지모토 다쓰키의 세계는 기이하고 불친절하다. 플롯은 예상을 배반하고, 연출은 B급 영화처럼 거칠다.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전통적인 서사를 믿을 수 없는 시대, 상하좌우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오늘의 욕망에 충실한 덴지는 역설적으로 더 큰 공감과 해방감을 준다. 젊은층이 열광하는 이유다.
지난해 9월5일 개봉해 30만명이 본 <룩 백>과 올 10월24일부터 메가박스에서 상영한 <후지모토 타츠키 17-26>은 후지모토 다쓰키의 기이한 세계를 보여준다. SF, 판타지, 일상물을 넘나드는 도발적인 상상력은, 날것의 매력으로 마니아를 끌어들이고 점점 확장해 나간다. 동시에 후지모토의 세계 밑바닥에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진심과 열정이 진하게 깔려 있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은 전형적인 성공 공식을 따르는 메이저만 편애하지 않는다. <체인소맨>처럼 기괴하고 마이너한 감성의 작품도 연재 기회를 얻고, 독자의 반응을 얻으면 과감하게 애니메이션으로 뻗어간다. 메이저와 마이너, 왕도와 사도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공존하며 거대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힘은 보편적인 것과 실험적인 것 모두를 품어내고, 지원하며, 성공으로 이끄는 시스템 자체다. 성공을 부러워하며 ‘성공 법칙’만 따라 하지 말자. 결국은 다양성이고, 도전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노선으로 실용주의를 내세웠을 때, 이념적 도그마에서 자유로운 실사구시의 길을 가길 바랐다. 보수든 진보든 혹은 좌든 우든 근대적 세계관에 갇혀 있다고 평소에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용주의라는 다소 위험한 언어가 이왕이면 자유롭고 활달한 실사구시적인 맥락을 갖길 바랐던 것이다. 유시민 같은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사고가 연역적이 아니라 경험에 근거한 귀납적이라고 말했지만 그런 논리학적 구분법도 사실 어떤 도그마에 의거한 말이다. 경험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개인의 꿈과 상상력, 역사와 공동체에 대한 비전이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일 실용주의에 그러한 것이 없다면 그 실용주의는 가벼운 성과주의에 머물고 말며 대통령의 경우는 국가 공동체에 깊은 내상 혹은 질환을 심어줄 수도 있다.
원전 경각심·문화 감수성 등 지워져
니체는 약관의 나이에 쓴 <비극의 탄생>에서 소크라테스 시절의 ‘그리스적 명랑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 적이 있다. “이제 그것은 무거운 책임을 질 줄 모르고 위대한 것을 추구하지도 않으며 현재의 것보다도 과거의 것이나 미래의 것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노예의 명랑성이다.” 니체는 그리스 비극이 소크라테스적 인식과 이론을 중시하는 문화로 인해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고 봤다. 하지만 비극 양식이 살아 있던 시절의 ‘그리스적 명랑성’은 이와는 달랐다. 그것은 존재의 어두운 심연을 본 눈을 현실에 돌렸을 때 생기는 빛나는 반점, 즉 그럼에도 삶을 살기 위해 창조해낸 (예술적) 명랑성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니체가 말하지 않은 것은 그 당시 아테네의 정치와 경제 상황이다. 니체에게 최고의 예술 양식이었던 비극의 몰락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했던 수탈을 통한 방만한 물질이 아테네 시민들의 민주적 덕성을 좀먹고 있던 시기와 겹친다.
이재명 대통령이 택한 실용주의가 배제한 게 몇가지 된다. 그런데 그것들은 우리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큰 의미와 가치들이다. 그리고 이 의미와 가치들은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도리어 삶의 건강한 지속을 위한 토대들에 해당한다.
떠오르는 대로 몇가지 적어보면 이런 것들이다. 먼저 원자력(핵)에 대한 둔감함, 생태적 가치에 대한 무관심 혹은 방기, 기초 문화예술과 교육에 대한 얕은 문제의식, 카지노 경제에 대한 둔한 도덕의식 등등.
지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요청한 사실 등에서 보듯 대한민국 자체가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원자력과 인공지능(AI)의 상관성도 눈여겨봐야 한다. 여러 기사에서 확인되듯이 AI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전기를 소비하는데, 미국에서는 2035년까지 현재보다 5배의 전기가 소비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게 원자력(핵) 발전 산업이다. 나아가 전기를 폭식하고 뜨거워진 AI 데이터센터를 식히는 데 필요한 물은 사람과 다른 생명의 것을 가로채서 충당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빅테크들이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에 눈길을 돌리는 것은 미국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발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대동 세상’ 위해 시민 역할도 중요
AI에 대한 대비책으로 인문학자들은 인문학 교육을 강조하고 있지만, 인문학마저 AI를 위한 빅데이터 취급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합당한 반응인지 의문이다. 한발 양보한다 해도 이마저도 제대로 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단적인 예로 정부의 기초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경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교육 당국마저 AI 교육을 외치는 마당이니 과연 대한민국은 ‘AI 숭배’가 대세인 듯하다. 문화예술을 철저히 산업으로 보려는 시각이나 청소년 교육에 AI가 강조되는 현상도 사실 긴밀히 연관돼 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어두컴컴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이 현실주의는, 오로지 물질을 숭배하는 문화를 광범위하게 퍼뜨리는 중이다. 이미 대통령이 나서서 주식에 투자하라고 독려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땀 흘려 일해서 생활을 유지하려는 평범하지만 건강한 경제 관념을 아예 뿌리째 뽑자는 카지노식 한탕주의를 주입시킬 것이며, 이는 벌써 일상적으로 확인되는 현상이다.
정말 두려운 것은, 원전이나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문화예술에 대한 감수성과 경제에 대한 건강한 관념이 빠르게 지워지고 있는 일이다. 어쩌면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는 우리에게 닥친 복합적인 위기에 대한 대처라기보다는 사후 승인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실용주의로는 대통령이 직접 말한 대동 세상은 어림없는 일이 된다. 대동 세상이 고작 코스피 지수가 높은 나라는 아니지 않은가. 모든 것이 대통령 개인 탓이라 말할 수 없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기에 하는 말이다. 덧붙여 시민의 역할도 막중한 시기다. 매사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발상은 민주적이지도 않고 진보적이지도 않다. 보다 좋은 민주주의는 시민 각자가 어떤 꿈과 상상력을 갖고 있는가에 의해서 최종 결정되기 때문이다.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이 ‘21세기 최고의 곡 250’을 뽑았다. 뉴진스의 ‘Hype Boy’, 소녀시대의 ‘Gee’,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등이 포함됐다. BTS(사진)가 빠질 수 없다. 그들의 곡 ‘봄날’은 K팝 중 최고 순위인 30위에 올랐다.
격세지감이라는 말도 진부할 만큼 K팝은 대세다. 그러나 K팝을 장르로 인식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아니다. K팝은 일종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심지어 역사적으로 검증된 모델을 따르지 않고, 그것을 전복한 형태로 거대한 성과를 일궈냈다.
20세기까지 음악 비즈니스는 이런 순서로 전개됐다. 음악 만들어서 앨범 내고, 공연에서 팬과 만난다. K팝은 역으로 간다. 데뷔 전에 팬의 의견을 수용하고, 음악과 브랜딩을 추후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K팝에서는 스트리밍과 저작권보다 공연과 상품 판매 등 팬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직접 수익이 중요하다. 여러 버전의 앨범 발매 역시 K팝이 CD를 굿즈로 파악한다는 점을 증명한다.
즉 K팝은 주입식에 가까웠던 음악 사업의 흐름에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를 불러온 사례다. K팝 이후 스타는 과거와 다르다. 그들은 더 이상 별처럼 군림하지 않는다. 대신 관심이 최고의 화폐로 거래되는 소셜미디어의 특징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소셜미디어에서 팬과 스타의 거리는 어쨌든 좁혀진다. 팬의 관점에서 그것은 일방이 아닌 쌍방이다.
“K팝이 지속 가능할까?” 수도 없이 받는 질문이다. 나는 유발 하라리가 아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을 내놓을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다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과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다. 특히 CD 다종화 전략의 경우, 부작용이 드러난 지 오래다.
영화 대사 그대로 “돈이 원하는 건 더 많은 돈”이더라도 최소한의 윤리는 지켜야 한다. K팝의 지속 가능성이 줄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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